<연재 순서>
上. ‘홍종학법’으로 시작된 면세점 입찰 잔혹사
中. 사드발 한한령 심화, 2017년 면세점 최대 위기
下. 국내 시장 포화…업계, 해외서 ‘블루오션’ 찾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은 정부다” 지난해 12월, 이른바 면세점 3차 입찰 대전 직후 국내 면세점 업계의 고위 임원은 이렇게 탄식했다. 그는 2015년부터 무려 3번이나 치른 업계의 입찰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이 모든 게 홍종학법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래픽=임이슬 기자 ]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은 정부다”
자, 그의 말처럼 4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국내 면세 특허권은 1973년 국내 최초 시내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이 영업을 시작한 이후 40년 넘게 별달리 제도변화가 없었다. 10년 주기였던 특허권 재승인도 사실은 있으나마나 했고, 큰 결격 사유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갱신돼왔다.
그러다 ‘경제민주화’가 선거판 화두로 등장한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012년 11월 관세법 개정안이 처리됐다. 경실련 출신인 홍종학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전 의원이 대표 발의해 일명 ‘홍종학법’으로 불리게 된 이 법으로 인해, 면세점 업계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게 됐다.
면세점 특허기간은 종전 10년에서 5년으로 줄었고, 특허가 만료되면 반드시 관세청의 입찰 심사를 통과해야 했다. 그 결과 면세점들은 5년마다 특허권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게 됐다.
홍종학법의 시행으로, 승자와 패자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2000년 이후 첫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를 선정한 2015년 7월 입찰에서 HDC신라, 한화갤러리아, SM면세점(중소·중견)이 승리했다.
같은 해 롯데면세점 소공점과 월드타워점, SK워커힐의 특허권이 만료됨에 따라 치러진 2차 입찰대전에선 이변이 속출했다. 롯데는 소공점 수성은 했지만, 연간 1조원 매출을 기록해온 월드타워점을 잃었고, SK워커힐도 특허가 만료돼 37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신규로 신세계DF와 두산(두타면세점)이 진입하면서 면세업계가 격변기를 맞게 됐다.
문제는 지난해 12월 치러진 3차 입찰 대전이었다. 당초 추가 입찰은 없다던 관세청은 종전 방침을 뒤집고, 불과 5개월만인 지난해 4월 서울 시내면세점 4곳 추가 입찰을 공식화 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 최순실의 개입, 롯데와 SK의 면세사업권 회복을 위한 로비설이 숱하게 불거졌고 현재까지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두 기업의 대가성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이다.
결국 지난해 12월 입찰에서 롯데면세점이 월드타워점 부활에 성공했고, 유통 ‘빅3’ 중 면세점을 유일하게 면세점을 보유 못했던 현대백화점도 첫 특허를 획득했다. 신세계는 명동에 이어 강남에도 면세점 거점을 마련했고 중기 업체로는 탑시티 면세점이 추가되면서 ‘무한경쟁’에 돌입하게 됐다.
2년 새 세 차례나 치른 입찰 대전에 대해, 정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유커들의 면세시장 수요에 부응하기 위함이란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결국 정부가 무리하게 특허권을 늘리면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업계가 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관세청에 따르면, 전국 22개 시내 면세점 사업자가 지난해 여행사 등에 지급한 송객 수수료가 9672억원으로, 1조원에 육박한다. 송객수수료란 여행사나 가이드가 데려온 관광객이 산 매출의 일부를 여행사 등에 지급하는 것이다.
지난해 송객수수료는 단체 관광객 매출액(4조 7148억원)의 20.5%, 시내 면세점 매출액(8조 8712억원)의 10.9%였다. 특히 서울의 신규 면세점이 경우, 송객수수료율은 26.1~31.0%에 이를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문을 연 신규면세점의 실적은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까지 HDC신라면세점(-167억원), 하나투어SM면세점(-208억원), 한화갤러리아63면세점(-305억원), 신세계DF(-372억원), 두타면세점(-270억원) 모두 수백억대 적자 사태를 빚었다. 그나마 HDC신라만이 지난달 겨우 흑자로 전환됐을 뿐이다.
반면 12조2757억원에 이르는 지난해 국내 면세점 매출 중 업계 1, 2위인 롯데와 호텔신라가 각각 5조9700억원, 3조325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대기업 두 곳이 전체 시장의 76% 가량을 점유한 것이다.
이처럼 자금력이 있는 두 업체는 당분간 버틸 여력이 있지만, 보세 노하우가 부족하고 규모의 경제가 어려운 소규모 신규 면세점들의 적자행진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발 사드 악재가 이어지고, 그에 따른 유커 방문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향후 국내 면세점 시장 상황을 어둡게 한다. 이런 업계 사정은 아랑곳 없이 정부는 특허수수료에 혈안이 돼있다. 기획재정부는 관세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면세점 매출의 0.05%를 부과하던 특허수수료를 0.1~1%로 20배 가까이 올릴 예정이다.
여기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면세 특허권을 놓고, 관세청과 인천공항공사가 ‘나눠먹기’ 입찰에 합의한 것도 업계를 분노케 하고 있다. 양측은 최근 대립 끝에, 공항공사가 우선 평가해 복수의 후보자를 선정하고 이를 상대로 관세청이 특허심사위원회를 열어 최종사업자를 선정한다는 ‘비정상적인 합의안’을 도출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시장 상황은 계속 나빠지는데 정부는 원칙 없는 특허권 장사에만 혈안이 돼 있는 상황”이라면서 “당초 홍종학법 취지가 면세시장의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되레 면세점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업계 내 빈익빈부익부 현상만 심화되는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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