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부르하트르의 저서 <아름다움의 제국>(2005년)은 소위 ‘잘 나가는’ 여성 CEO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경영인으로서, 그리고 선구자로서 여성의 삶과 사랑을, 고통과 슬픔을 과장 없이 담담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여준다. 이 책에서 소개된 로더의 영업전략은 이른바 '공짜' 마케팅이다. 뉴욕의 한 미용실에서 팔고 남은 화장품을 작고 예쁘게 포장해 손님들에게 나눠준 일화를 담고 있다. 업계 최초의 무료 샘플이다. 로더가 살아 생전에 ‘세일즈의 귀재’로 불린 이유다.
공짜 마케팅 중 최고봉은 주는 이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남발하는 경우다. 국내 정치에서는 이미 횡행하고 있다. 이른바 선심공약이다. 15대부터 17대까지 세 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허경영 후보는 당시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에게 국가가 100만원 쿠폰 지급, 한 직장에 5년 있으면 3억원의 창업자금 지원 등 ‘청년취업 국가책임제’를 주장했다. 여기에 ‘결혼하면 1억원, 주택자금 무이자로 2억원, 출산하면 3000만원, 국민배당금 부부 합산 매월 300만원’ 등 파격적인 공약을 쏟아냈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허경영 후보의 후배들이 우후죽순으로 출현하고 있다. 인간의 공짜 심리를 파고드는 세일즈의 귀재라기보다는 무책임의 귀재들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공공부문의 인력 충원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131만개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지난달 자신의 싱크탱크가 주최한 정책포럼에서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부터 늘리겠다”며 소방관, 경찰, 교사, 복지공무원 등 증원 영역까지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또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개를 창출하겠다”며 연차휴가만 의무적으로 다 쓰게 해도 30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총체적인 공급과잉과 과당경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자리 해법을 민간기업에만 맡겨 둘 수는 없다. 이에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정부와 정치권은 자국 기업들이 가혹한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민간과 공공부문이 함께 노력해 일자리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이뤄내야 한다. 그런데도 국민의 혈세만 쏟아붓겠다는 것은 대선후보로서 무책임한 임기응변식 대안일 수 밖에 없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은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보다 공짜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공짜에 눈이 멀면 독극물까지 서슴없이 받아마시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엄중한 경고는 숨겨진 채 공짜의 유혹만이 두드러지게 위세를 떨치는 일이 다반사다.
특히 오는 19대 대선은 조기대선 내지 벗꽃대선으로 불리면서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대선후보들간 경쟁이 과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내놓는 복지 공약((公約)들은 현실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공약(空約)으로 끝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아래서는 더더욱 그렇다.
대선후보들은 복지정책 공약을 다시 꼼꼼히 검토해 우선순위를 매기고 불필요한 공약을 과감히 털어내야 한다. 국민의 혈세를 마치 공짜처럼 선심쓰듯 하는 대선후보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js333@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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