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뮤지컬 ‘보디가드’는 저를 뮤지컬 디바로서 한걸음 더 업그레이드 시켜주고 저를 더 깊고 넓게 만들어준 작품이에요.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더 생긴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 정선아는 한국 뮤지컬 여배우를 대표하는 디바로 손꼽힌다. 2002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그는 ‘드림걸즈’ ‘지킬 앤 하이드’ ‘위키드’ ‘에비타’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굵직한 대작들을 소화했다. ‘위키드’에서는 마지막 공연을 기준으로 글린다 역으로만 187회 출연해 ‘국내 최다 글린다’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번 ‘보디가드’ 출연은 정선아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혼자서만 16곡에 달하는 공연 넘버를 부를 뿐 아니라 춤을 추는 장면도 많아 체력적인 소모도 극심하다. 의상을 갈아입어야 하는 장면도 많아 시종일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보디가드’는 1990년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휘트니 휴스턴,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해 휴스턴이 남긴 히트곡들을 엮은 작품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직업 경호원 프랭크 파머가 스토커에 쫓기고 있는 당대 최고 여가수 레이첼 마론을 보호하면서 싹트는 러브 스토리를 그린다.
정선아는 “휘트니 휴스턴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휴스턴은 노래를 잘한다는 걸 넘어서 가슴으로 노래하고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다. 나도 음악적으로 갇혀 노래를 잘 부르려고 하기보다 극 중 한 곡 한 곡마다 어떤 메시지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래뿐 아니라 이야기 속의 감동과 메시지를 잘 전달해주고 싶다"며 "옛 시절의 ‘보디가드’를 떠올리게 해주고 싶다. 뮤지컬을 본 적이 없는 관객도 이번 작품을 보고 뮤지컬에 애정과 즐거움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보디가드’에서 정선아는 당대 최고 톱스타인 레이첼 마론 역을 맡아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져 있던 톱스타의 인생과 사랑을 그린다. 그는 “레이첼의 사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만약 무대에서 내려와 아들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봤다”며 “레이첼은 모성애가 강하고 사랑이 강한 캐릭터 같다”고 말했다.
무대 위에선 대중에게 관심 받지만 무대 밖의 모습은 평범한 한 여성이란 점에서 레이첼과 정선아는 닮아 있기도 하다. 그는 “레이첼은 화려한 무대를 자랑하는 당대 최고의 스타이기 때문에 남들의 부러움을 받지만, 무대에서 내려왔을 땐 싱글맘이다. 한 남자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가녀린 여자의 마음도 있다”면서 “나와 같은 여배우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편하게 화장도 안 하고 집에서 널브러져 텔레비전을 본다. 가족을 향한 사랑, 연인을 향한 사랑도 다 비슷하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레이첼 역에는 정선아와 함께 가수 손승연, 양파가 캐스팅됐다. 손승연은 파워풀한 가창력이 뛰어난 신인 가수이고, 양파는 소울이 넘치는 감성이 돋보이는 베테랑 가수다. 정통 뮤지컬 배우로는 정선아가 유일한 셈이다.
그는 가수들 사이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세 명이서 한 배역을 맡은 건 처음이다. 뮤지컬만 했던 나로선 가수들 사이에서 팝의 느낌을 어떻게 줘야할지, 차별화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며 “다른 장르의 끼 많은 분들이 함께 하는 것은 내게 큰 도움이 된다. 여러 가지 면에서 나를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정선아는 휴스턴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휴스턴의 원곡을 많이 참고했을 뿐 아니라 비욘세나 다른 댄스 가수들의 자세를 습득하기 위해 부단하게 연습했다. 그는 “휴스턴의 라이브 무대를 보면 가만히 서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난 뮤지컬 배우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두고 노래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 부분들을 살펴보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다”고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정선아의 상대역이자 극 중 보디가드인 프랭크 파머 역엔 배우 이종혁과 박성웅이 출연한다. 이들과의 호흡에 대해 정선아는 “박성웅은 함께 무대에 있으면 떨린다. 역할에 정말 잘 스며들어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박힌다”며 “이종혁은 워낙 뮤지컬을 많이 해서 능수능란하다. 관객석에 무거운 분위기가 흐를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이종혁이 그런 부분을 잘 풀어준다”고 말했다.
정선아에게 실제 보디가드 같은 존재는 누구일까. 그는 “내겐 가족이 영원한 보디가드다. 그래서 가족이나 부부끼리 관람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웃었다.
평소 공연 후 여행을 즐겨 다닌다는 정선아는 ‘보디가드’를 마친 뒤에는 따뜻한 나라로 갈 계획이다. 그는 “이번 겨울 추위 때문에 힘들었다. 좋은 컨디션으로 임해도 부담감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며 “체력과 목 관리를 잘 해서 3월에 공연이 끝나면 더운 나라로 가 모든 짐들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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