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김혜란 기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다. 2017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 감정’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자에게는 ‘고뇌’가, 밀린 자에게는 ‘나락’이 각각 기다린다. 계층·계급 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는 없다. 코끝을 에는 강추위를 뒤로하고 봄은 다가오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절망의 눈물이 담긴 아우성뿐이다.
한때 ‘경제의 본질을 알고 싶을 땐 그의 강의를 들어라’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지금도 경제학 교과서의 바이블로 통하는 거시경제론 저자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다. 정 이사장은 존 네빌 케인스(John Neville Keynes) 원전을 번역한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의 수제자다. ‘조순학파’가 케인지언 1세대인 셈이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정 이사장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겁 없는 도전이 시작됐다. 정 이사장은 19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래서 찾아갔다. 정 이사장은 지난 15일 서울 관악구 동반성장연구소에서 가진 본지와 특별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동반성장 국가”라고 잘라 말했다. ‘동반성장형 경제질서 구현’은 정 이사장의 핵심 트레이드마크다.
지난 2009년∼2010년 국무총리 자리에서 내려온 정 이사장은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직후 ‘초과이익공유제’를 사회 담론으로 던졌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동반성장’ 어젠다 제시는 그의 ‘삶의 궤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간의 이력만 보면 그는 대표적인 금수저다. ‘경기중·고등학교-서울대학교 경제학과-마이애미 대학교 경제학 석사-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거쳐 서울대 교수, 국무총리 등을 거쳤다.
그러나 정 이사장의 어린 시절은 가난, 그 자체였다. “힘들게 공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힘든 정도가 아니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장학금을 받고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시절 캐나다 출신의 학자이자 대한민국 독립운동을 했던 스코필드 박사를 만나 ‘격차 해소’ 등의 소명을 받았다.
이후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조순 명예교수를 만나 케인스 이론을 배운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흙수저’가 ‘검은 목요일’로 불리는 대공황을 극복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확장 재정정책인 ‘뉴딜’(New Deal) 정책을 공부했다. 그 철학적 기초 아래 ‘동반성장형 경제질서’가 나왔다.
정 이사장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질서 구축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동반성장 3정책(초과이익공유제·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정부 발주 사업의 중소기업 직접 발주제), 중기적으로는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교육 혁신 △장기적으로는 남·북·중·러의 경제 공동체를 각각 제시했다.
그는 향후 대선 행보와 관련해선 “누구에게도 문을 열지 않았지만, 또 누구에게도 문을 닫지 않았다”라며 “동반성장 가치에 동의하는 세력이 누군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탄핵 전후로 결정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19대 대선은 포스트 신(新) 질서를 재편하는 분기점이다. 왜 ‘정운찬’이어야 하는가.
“두 가지가 필요하다. 정치적으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1인 집중의 권력분산’이다. 경제적으로는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함께 잘 사는 경제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권력 분산은 개헌으로, 함께 잘 사는 경제질서는 차기 정부의 국가 정책을 통해 구체화될 것이다.”
-1000만 촛불 혁명이 현재진행형이다. 촛불집회 현장에 참여한 적이 있나.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거리에서 본 촛불집회 민심은 어땠나.) 촛불집회의 직접적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다. 그러나 근원은 경제적 불평등에 의한 ‘사회 양극화 현상’이다. 이제는 경제질서를 바꿔야 한다. 산업화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변하지 않는 ‘재벌 대기업 중심의 수출 주도 성장’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97년 체제의 한계인 대기업 중심의 수출 주도 성장 정책을 어떤 기조로 바꿔야 하나.
“중소기업 중심의 내외수 균형 성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 대안은 ‘동반성장’뿐이다. 그래서 대선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
◆“촛불민심 근원은 사회 양극화…동반성장이 답”
-이번 대선은 2018년 체제를 여는 정초 선거다. 87년 체제와 97년 체제를 뛰어넘기 위한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핵심 슬로건인 ‘동반성장국가’인가.
“맞다. ‘동반성장국가’가 시대적 과제다. 이는 사회 작동 원리다. 모든 사회에는 주도적인 작동 원리가 있다.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고전적 자본주의는 ‘공정한 관찰자’와 ‘자유로운 경쟁’이었다. 케인스 자본주의는 국가가 공정한 관찰자 역할을 하면서 ‘제한적 자유경쟁’,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오직 자유경쟁’이 사회 작동 원리였다. 그런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제는 공동체 사회의 발전이 함께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탄핵과 조기 대선이 맞물린 현재도 ‘4월 위기설’ 등으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중국발(發) 리스크 등 세계 경제뿐 아니라 내수도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근본적 모순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지금의 한국 경제는 ‘욕조 속의 개구리’다. 박근혜 정부가 한국 경제를 걱정했다면, ‘구조조정’과 ‘잠재성장력 확충’을 해야 했다. 그런데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 ‘부채주도 성장’ 정책을 쓰지 않았느냐. 결과는 1300조 원에 다다르는 가계부채로 이어졌다. 미국의 금리 인상 때 이 가계부채 때문에 통화신용 정책의 여유가 없을 것이다. 구조조정 적기에 기업 자율이 아닌 정부 주도로 한 것도 실책이다. 정책 자금은 투입했지만, 현상유지만 하는 상황이 됐다. 이는 차기 정부에 큰 부담이다.”
-지금의 위기는 순환적 위기가 아닌 ‘수출과 내수의 부진→소비 감소→기업투자 위축’ 등의 구조적 위기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어떤 조치가 내려져야 하나.
“첫 번째는 ‘고통 분담’과 ‘함께 잘 사는 사회 건설’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빠른 시간에 완쾌되는 번개 정책은 없다. 투입하면 바로 좋아지는 것은 마약뿐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부채주도 성장으로 성장률이 올라간 정부와 토건족은 좋았지만, 지금 남은 것은 가계 부채와 과잉 공급된 부동산이다. 그 후유증은 심각할 것이다. 두 번째는 중소기업 주도의 경제구조 로드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 동의를 바탕으로 ‘동반성장 3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與野 대선주자에 경제토론 계속 요구할 것”
“지금 대기업은 사내유보금은 많지만, 투자할 곳이 없다. 중소기업은 기술은 있으나, 투자할 돈이 없다. 양자를 조화시켜야 한다. 초과이익공유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정부 발주 사업의 중소기업 직접 발주제 등을 하면 대·중소기업 간 균형 경제를 이룰 수 있다. 불평등 핵심 원인인 임금 격차 해소는 물론, 중소기업의 좋은 일자리도 창출해낼 수 있다.”
-19대 대선 후보 ‘정운찬의 핵심 공약’을 소개해 달라.
“기본소득제와 국민휴식제다. 전자는 당장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부담이 있다. 먼저 하위 40% 국민(약 2000만 명)을 대상으로 월 35만 원 정도 지원하겠다. 이 경우 연간 약 72조 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국민휴식제는 생애 전환기에 있는 국민들에게 6개월간의 휴식을 할 경우 기본소득의 2배와 다양한 바우처 쿠폰을 시행하는 것이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계획인가. 참여정부 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맞서 감세 반대를 주장했던 게 생각난다.
“그랬지(웃음)…. 이명박 정부 때도 법인세 최고구간을 24%에서 22%로 인하했다. 관료들이 다 내리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큰일 난다’고 했다. 당시 재벌·대기업의 실효세율이 12∼13%밖에 안 됐다. 명목 법인세를 올리기보다 각종 공제, 감면제도를 대폭 정리하면 된다. 현행 세제에도 각종 공제가 많다. 이를 단순화하고 실효세율을 인상하면 세수 확대가 가능하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에게 경제 토론을 제안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계속 요구할 것이다. 형식 없는 무한토론이 필요하다고 본다.”
-문 전 대표의 ‘81만 개 일자리’ 정책은 어떻게 보나.
“사실상 공무원 수를 늘리는 정책으로, 장기적으로 나라 살림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나쁜 정책이다. 그럴 예산이 있다면, 기본소득을 비롯한 복지에 쓰는 게 낫다.”
◆“文 대세론? 의문이다…내 모든 것 바칠 것”
-‘문재인 대세론’은 유효하다고 보는가.
“의문이다. 지금은 탄핵 국면 때문에 모든 국민이 차기 리더십에 관해 깊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 탄핵 심판이 결정되는 순간, 바뀔 것이다. 동반성장 국가 건설이 시대적 과제라는 것만 얘기하겠다.”
-정치권에선 정 이사장의 행보를 놓고 ‘제3지대 독자완주’와 ‘국민의당 입당’, ‘더불어민주당 입당’ 등 각종 설이 난무하다. 명확한 입장을 밝혀 달라.
“문은 닫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문을 연 것도 아니다. 끝까지 혼자 갈 수도 있다. 다만 정치는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빨리 결정할 것이다. 동반성장 가치에 동의하는 세력이 누군지에 대한 고민이 깊다. 탄핵 전후로 결정할 수도 있다.”
-앞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행보를 하던 때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 공동대표 등 정치인들과 회동을 한 바 있다. 최근에도 여야 정치인들과 회동을 한 적이 있나.
“만났다. 여러 정치세력과 직간접적으로 얘기하고 동반성장 가치 구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차기 대선주자로서 각오를 밝혀 달라.
“은사인 스코필드 박사께서 ‘정치는 기본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곳이니 가지 말라. 그러나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네 몸을 국가에 바쳐라’고 말씀했다. 지금이 바로 그 위기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국가와 국민들부터 과분한 사랑과 혜택을 받았다. 이제 국민과 나라를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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