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개봉한 영화 ‘조작된 도시’(감독 박광현·제작 티피에스컴퍼니·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3분 16초 만에 살인자로 조작된 남자 권유(지창욱 분)가 게임 길드원들과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오정세는 승률 0%의 무기력한 국선 변호사 민천상을 연기했다. 얼굴의 반을 차지한 오타반점과 여유 없이 빗어 넘긴 머리, 어눌한 말투와 어리숙하고 소심한 태도를 가진 민천상은 알고 보면 모든 사건을 ‘조작’한 브레인 중 브레인. 기괴한 외피만큼이나 비밀스러운 속내를 가진 인물이다.
완벽하고 철저하게 인물들 파고드는 오정세는 이번 캐릭터 역시 자신만의 접근법으로 민천상을 만들어나갔다. 그런 그에게 ‘조작된 도시’ 속, 민천상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조작된 도시’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민천상이었다
오디션까지?
- 그만큼 욕심이 났다. 감독님께서 민천상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셔서 제가 생각하는 민천상의 디테일을 풀어놓았다. 경우의 수를 제안한 셈이다. 감독님의 아이디어와 제 아이디어를 조합해 디자인했다.
감독님을 설득한 셈이다
- 여러 가지를 설득했다. 물론 제가 당한 부분도 많다. 처음 감독님이 제게 주신 키워드는 ‘결핍’이었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결핍을 통해 나쁜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민천상이 겪었을 결핍을 찾아 나섰다.
오정세가 발견한 민천상의 결핍은 무엇이었나?
- 별걸 다 생각했었다. 처음 감독님께 제안 드린 건 왜소증이었다. 감독님 반응도 좋았는데 회의를 해보니 제작비가 곱절이 든다고 무산됐다. 하하하. 저는 제 안에 캐릭터 저장 창고를 가지고 있는데 사실 민천상은 그 안에 있는 인물 중 하나다. 제가 저장한 이미지 중 민천상과 어울릴 것 같은 인물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왜소증이 좌절되고 오타반점으로 합의한 건가?
- 그렇다. 지나치게 머리숱이 없는 악역도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물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아서 좌절됐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오타반점이다. 제가 허벅지에 오타반점이 있는데 이걸 얼굴에 그리면 어떨까 생각했다. 처음 민천상을 떠올렸을 때 연민이 느껴지는 힘없는 국선 변호사에서 악의 중심이 되는 강렬함을 떠올랐는데 오타 반점과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캐릭터 저장소라니 특이하다
- 사람들을 많이 관찰한다. 그리고 재밌는 부분들이 있으면 잘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비슷한 작품을 만나게 되면 써먹는다. 예컨대 A를 만나서 얄미운 느낌이 들면 그 느낌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외적 모습이나 행동 하나하나들을.
민천상 역시 누군가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졌겠다
- 그렇다. 덕분에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다. 잘 안 보이시겠지만 이마가 더 넓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앞머리를 조금 깎기도 하고 양복도 빅 사이즈로 맞췄다.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것처럼. 하지만 원단은 제일 비싼 거로! 그게 제가 생각하는 민천상의 외적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내적인 면들은 어땠나?
- 연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연민에서 악의 중심, 반전의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그래서 얼굴에 있는 오타반점도 흐리길 바랐는데 감독님은 진한 걸 원하셨다. 연민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혐오라는 단어가 드러나면 제가 가진 민천상의 설계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저는 인물의 반전을 포인트로 생각했다면 감독님은 상황적인 부분을 생각하신 거다.
디테일들이 돋보였다. 일반적 악역과는 달랐으니까
- 일반적이지 않길 바랐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민천상이라는 인물이 남들과 달리 느껴지길 바랐다. 예컨대 민천상이 분노하는 모습은 뾰쪽하기보다는 추상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아이 같은 면들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워낙 디테일을 심어놓는 배우다 보니, 민천상이라는 캐릭터 역시 그런 디테일을 남겼을 것 같다
- 묘함! 그걸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민천상을 딱 봤을 때 뭔지 모를 묘한 감정, 어딘지 의아한 느낌이 들길 바랐다. 그래서 자세도 구부정하고 눈도 한쪽만 끔뻑거린다. 사실 기타노 다케시가 말할 때 눈을 따로 깜빡거리는데 그 모습을 보고 묘한 느낌을 받아서 따라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건 무리더라. 하하하. 그런 요소들이 하나씩 쌓여서 민천상이라는 인물을 묘하게 느끼길 바랐다.
민천상 캐릭터만큼이나 영화의 낯섦에 관해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 저는 이 영화가 개연성이 없다 여기지 않는다. 만화적 상상력과 유쾌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재밌는 영화지만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숨겨진 의미들이 빼곡하다. 일일이 비하인드를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감독님과 이야기하다 보면 저도 몰랐던 의미들에 감탄하곤 한다.
박광현 감독님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것 같다
- 정말 팬이었다. ‘웰컴 투 동막골’을 정말 좋아했고, ‘조작된 도시’를 두고 이야기하다 보면 영화가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사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그냥 만화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단순히 상상력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었고 조심스럽지만 현 시국과도 닿아있어서 허무맹랑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민천상이라는 인물과 큐브라는 공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인데
- 허공에 대고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하하. 거대 컴퓨터고 여긴 모니터고 쏟아지듯 자료가 나올 것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마음대로 놀라고 하셨다. 아무것도 없는 데에 연기하는데 제안에서 그림을 그려가려고 했다. 사진을 펼치고 던지기도 하고. 전 자유로웠지만 CG 팀이 힘들었을 거다.
결과물을 보니 어땠나?
- 역시 CG 팀이 힘들었겠구나 하는 생각? 하하하.
어느 순간 다작의 아이콘이 됐다.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는데
- 그냥 매 작품 좋은 의미를 두려고 한다. 사실 한때는 코미디 연기만 한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다음 작품을 찍었더니 그다음에는 악역만 하느냐고 물으시더라. 그런 이야기들이 처음에는 신경 쓰였는데 이제는 매 작품 열심히 접근하고 촬영하려고 한다.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지만 뻔한 캐릭터, 뻔한 작품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 익숙하지 않은 것에 재미를 느껴서 그런 것 같다. 한 뼘 빗겨나간 캐릭터나 작품들이 흥미롭다.
예전에는 무채색의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여전히 그런가?
- 그러고 싶다. 욕심이긴 하지만 무채색을 가진 배우로 느껴졌으면 좋겠다. 0에서부터 시작하고 어느 색깔에 넣어도 어울릴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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