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에게 가장 힘들고, 가장 예상하기 힘든 것이 방출이다. 고창성(33) 역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2016년 11월25일 NC 다이노스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공 끝이 살아 있는 언더 핸드 투수. 두산 베어스의 필승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
야구팬들이 고창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2012 시즌부터 부진했던 고창성은 특별 지명을 통해 NC 유니폼을 입은 후에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군보다 2군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시련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고창성의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속 더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김경문 NC 감독과 부모님의 응원은 고창성에게 큰 힘이 됐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야구를 했는데, 항상 부모님께서 경기장에 오셨다. 부모님께서 편하실 수 있도록, 등판일을 미리 알 수 있는 선발 투수가 되고 싶었다.”
다시 야구공을 꽉 잡은 고창성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임호균 야구학교 감독은 “지금의 고창성에게는 절실함을 느낄 수 있다. 야구에 전념하고 있기 때문에 ‘제2의 고창성’으로 거듭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박명환 야구학교 코치는 “고창성은 앞으로 3~4년은 더 뛸 수 있는 투수다. 기술적인 면은 준비됐다. 몸 상태도 좋다”고 평가했다. 릴리스 포인트 기록, 구종별 초속과 종속 등 야구학교만의 세분화 된 데이터도 고창성을 돕고 있다.
2009년, 2010년 좋았을 때의 투구폼으로 돌아간 고창성은 “프로 구단의 테스트를 받아 보고 싶다. 어떤 순간이 와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