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근로복지공단이 여성근로자들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는 ‘인천직장여성아파트’다.
1988년에 지어졌고 1989년 7월 29일 첫 입주자가 들어온 이래 28년간 미혼 독신여성 근로자들의 따듯하고 아늑한 보금자리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일종의 ‘금남(禁男)’의 집인 셈이다.

금남의 집.[사진=인천시]
독신미혼 여성근로자들의 전용 주거공간인 ‘인천직장여성아파트’는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다.
1970,80년대 인천의 부평산단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여성근로자들은 수출역군으로 불렸고 이들은 돈을 벌기위해 도시로, 부평으로, 작은공장으로 몰려들었다.
여성근로자들은 하루 12시간 넘게 단순 노동과 씨름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여성근로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주거문제였다.

여성근로자[사진=인천시]
근로복지공단이 운영하는 ‘인천여성직장아파트’는 이들에게 안전한 주거공간과 도시의 비싼 주택임대료를 해결해 주었다. 직장여성아파트는 전국 6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인천직장여성아파트는 200세대 규모다. 13평형의 아파트에는 2명씩 살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는 319여명의 여성입주자들이 살고 있다.
아파트는 큰방, 작은방, 거실겸 부엌, 화장실로 꾸며져 있다. 이곳 아파트의 보증금과 월세는 주변시세의 50% 선이다. 아파트 입주 기간은 최초 2년이고 한 번에 한해 2년 더 연장이 가능하다.
이곳은 1989년 첫 건립됐을 때만해도 부평산단에 있는 공장과 계약을 맺고 그곳 여성근로자들을 위한 사택개념으로 활용됐다. 1
980,90년대엔 방이 모자라 한 세대에 3~4명씩 살았다. 처음 건립당시는 연탄 아파트였지만 시설만은 최고였다.
당시만 해도 인천엔 아파트가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다. 싸고 시설이 좋아 너도나도 들어오려고 대기자도 많았다고 한다.
여성근로자들이 들어가고 싶었던 이 아파트도 2000년대 들어 부평산단의 일부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업종이 변경되면서 입주인원이 줄었다.
또 요즘 젊은 미혼여성들이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을 선호하는 추세에 따라 점점 세대수가 줄고 있다. 현재는 70세대가 공실이다. 공장 종사자들이 떠나면서 현재 이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입주자들의 직업은 다양해졌다.
보육교사, 간호조무사, 일반사무직, 생산직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미혼독신 여성근로자들의 주거공간인 인천여성직장아파트도 재개발의 바람을 타고 있다.
이곳은 2018년 9월 이후 재개발에 들어가며 이후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행복주택으로 건립된다.
이에 올 10월 이후부터는 입주자를 받지 않는다. 행복주택이 건립된 뒤에는 직장여성근로자들이 우선입주 할 수 있도록 배려할 계획이다.
7,80년대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이끌며 수출역군으로 불렸던 여성근로자들. 이들이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고, 공장을 돌리던 그 힘이 지금 한국경제의 밑거름이 되었다.
인천여성직장아파트에서 여성근로자들은 지친 몸을 쉬고, 얼었던 손과 발을 녹였다. 여성노동자들의 애환이 녹아있고 우리나라 산업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곳이 내년 9월 이후엔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산업화의 또 다른 축을 이끌었던 역사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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