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투자진흥회의의 정책 선정·추진 과정에서 최순실 등 비선실세 영향력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일면서 관련 산업 추진에도 제동이 걸릴 공산이 크다.
정부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1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고 지역경제 활성화, 고령사회 유망산업 육성 등을 골자로 하는 투자 활성화 대책에 대해 논의했다.
무역투자진흥회의는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주재했지만, 대통령 직무 정지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이날 회의를 주재했다.
무역투자진흥회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무총리 주재 수출진흥위원회를 대통령 주재로 격상해 1965년 10월 처음 개최한 수출진흥확대회의가 모태다.
수출진흥확대회의는 1980년까지 모두 151차례 열렸고, 박 전 대통령은 이중 다섯 번을 제외한 모든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수출은 1965년 1억달러에서 1977년 100억달러로 불과 10여년 만에 100배 성장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후 정부의 '수출 강공 정책'이 약화하면서 주기가 길어지는 등 부정기 회의로 위상이 낮아졌다. 한동안 중단된 회의는 1998년 외환위기로 부활했지만 이전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무역진흥확대회의' 형식으로 3차례 열렸고 그나마 2004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1998년부터 2009년까지 무역투자회의는 불과 13차례밖에 열리지 않았다.
이후 박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재개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껏 모든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무역투자회의가 수출 중심이었다면 박 대통령은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한 투자 활성화가 핵심이었다.
정부는 10차례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총 943건의 분야별 제도 개선 과제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중 644개 과제의 추진이 완료됐고 216개는 정상 추진 중이며 83개 과제만이 법률안 국회 계류, 이해관계자 간 이견 등으로 지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투자 지원으로 벤처 기업 수가 3만개를 돌파하는 등 제2의 벤처·창업붐이 조성됐으며 의료·관광 등 유망서비스 관련 제도 개선으로 서비스 산업의 고용·부가가치 비중이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같은 정부 평가에도 불구, 실제 현장 내 정책 효과는 낮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제2의 벤처·창업붐이 조성됐다고 했지만 실제 청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비스 산업의 고용·부가가치 비중이 커진 것은 수출 부진, 제조업 경기 악화에 따른 착시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 4년여간 규제 완화 등 전방위적 지원으로 완공을 추진하겠다고 한 42개 프로젝트 과제 중 절반에 가까운 20개 과제는 아직 시작조차 못했다.
준공까지 한 과제는 새만금 산단 열병합발전소 건설, 서산특구 자동차연구시설 등 5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5건 중 투자규모가 1조원이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1건에 불과하고 5건의 투자 규모를 다 합해도 3조8200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총 42개 프로젝트 과제 투자규모(62조원)의 6%에 불과한 수준이다.
아직 착공하지 못한 과제 중 일부는 추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일정이 미뤄진 것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애초부터 올해나 내년 착공 예정이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또 회의 안건 중 다수는 최순실 관련설 등 각종 특혜 시비로 구설수에 올랐다.
예컨데 지난해 2월 17일 개최된 제9차 회의 당시 신산업 투자 규제 완화 안건 중 신약개발을 위한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 대상 확대,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요건 완화 등 바이오·헬스 분야 규제 완화는 차병원그룹 사업과 관계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
차병원그룹은 최순실 씨 자매가 박 대통령의 주사제 대리 처방을 받았다는 의혹이 나오는 차움 병원의 모그룹이다. 당시 회의는 경제수석이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안건을 조율했다.
차은택 씨 개입 의혹이 제기된 K-컬처 밸리 조성 지원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때였다.
지난해 7월 개최한 10차 회의에서는 갑작스럽게 이슬람교도가 사용하는 제품인 할랄 지원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차은택 씨가 중동 방문 이후 할랄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며 정부의 할랄 산업 육성책 역시 비선 실세에 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최순실 게이트'가 확산되면서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고, 지난해 말께 열릴 예정이었던 11차 회의는 줄곧 연기돼 왔다.
하지만 이번에 열린 회의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권한대행 신분으로 관련부처 장·차관이 참석하는 회의를 연 것을 놓고 황 권한대행이 차기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경제 현안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전시성 행정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황 권한대행은 최근 쪽방촌, 전통시장, 육군훈련소 등을 방문하며 민생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규제 관련 대국민 토론회 주재, 권한대행 직함이 새겨진 기념 손목시계 제작 등 대선 출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장대기 프로젝트 과제를 선정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거나 투명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본다"면서도 "다만 프로젝트 발굴 시기·방식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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