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자본주의 국가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7-03-21 11:3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너무나 평범한 풍경인 탓인지, 워낙 그런 풍경에 익숙한 탓인지 몰라도 21일 서울 중앙지검 포토 라인에 선 전직 대통령의 모습은 무덤덤하게 다가왔다.

세간의 관심이 쏠린 탓에 삼성동 집을 나서는 장면에서부터 검찰 청사에 도착해 차에 내려 포토라인에 서는 모습까지 TV로 생중계가 됐다. 과연 국민들이 채널 선택권을 박탈당할 만한 일인지도 궁금해졌다.

역사가 순리(順理), 즉 물이 흘러가는 것이라면 단언컨대, 박근혜 정부의 시간은 역사를 거스른 것이었다. 왕조시대에나 가능할 법한 일들이 속속 드러날 때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의심하게 될 지경이었다.

아무런 공직을 맡지 않은 민간인이 측근이라는 이유로 국가 정책을 주무른 희대의 비선 정치가 정녕, 21세기에 일어났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재벌들의 팔을 비틀어 재단을 만들고 재단을 활용해 사익을 추구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재벌들은 그 민간인에게 ‘찍히지 않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전 세계 일류 기업들과 경쟁하는 데 골몰하고 기업의 생존을 위해 모든 지혜를 모으고 힘을 기울이던 재벌총수들이 한 민간인에 의해 이리저리 끌려 다닌 것은, 왕조시대를 벗어던지지 못했던 국가 시스템의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다.

정부, 특히 청와대에 밉보여 좋을 것이 없다는 생존본능에 따른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어설픈 기업의 대응은 너무 아쉬웠고, 세계 일류 기업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으려 애쓴 일선 직원들에게 심한 허탈감을 줬을 것이다.

기업은 늘 전쟁을 치른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투쟁에서 패배하면 곧바로 기업이 망하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의 연속이 바로 기업의 생리다.

우리의 기업들은 외부적인 전쟁 외에 다른 내부 전쟁을 치러야 한다. 바로 청와대로 상징되는 정부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정부의 정책에 적극 동참하며 눈 밖에 나지 않고, 정부가 다시 내놓을지 모를 규제를 사전에 막기 위한 대관업무 역시 전쟁이다.

이 땅을 떠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훌쩍 떠나고 싶지만, 그것에 어디 그렇게 쉬운가. 한때 국내 제조업체들이 중국이나 동남아지역 국가들로 떠나가면서 ‘산업공동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적이 있었다.

국내에서 새로운 투자를 할 곳이 점차 좁아지는 바람에 실제 많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전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은 향후 지속될지도 모를 공장의 지속적 유출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다만 3D 업종의 경우,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공장을 세워야 할 정도다. 인력수급의 불균형 정도가 지나친 부분에 대한 점검은 또 다른 측면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대선 공약은 매번 헛공약으로 전락했다.

다시 검찰 청사 앞 포토라인에 선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떠올려낸다. 재벌들을 상대로 ‘삥을 뜯고’ 특정 민간인을 위해 압력도 불사했던 부분에서 생각이 멈춘다.

형사재판으로 이어질 예정이라 아직 법원의 최종 판결을 남겨두었지만,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기업들을 상대로 금품을 챙긴 혐의를 파면 사유로 삼았다.

헌재는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숱하게 제기된 여러 가지 의혹 가운데 탄핵 인용 선고에서는 기업 관련 뇌물수수 부분에 대해서만 상당한 부분에 걸쳐 혐의를 인정했다.

헌재의 이 같은 고민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그 물적 토대는 자본주의라는 헌법 정신에 충실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자본주의를 인정하고 그 자본주의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의 중요성을 이번 헌재 판결은 일깨워줬다.

헌재는 기업에 대해서는 ‘삥 뜯겼다’는 식으로 접근해 기업의 가치와 자율적인 경영권 행사의 중요성도 적시했다.

그동안 이 땅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는 법원 결정으로 판가름 나겠지만, 새로 들어설 정부는 그런 게이트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사회적인 시스템을 다시 세워야 하는 사명을 안게 됐다.

차가 대선 주자나 캠프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수립할 때 헌재가 강조한 자본주의 논리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자본주의에 붙는 자유나 수정 따위는 걷어치우고, 자본주의에 충실하게만 사회적 시스템이 굴러갈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시스템에서 소외되는 계층은 국가가 보호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그 물적 토대는 자본주의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