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존재는 공무원들에게 무기력증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는 정책 동력상실을, 조기대선은 정부조직 개편이라는 불안감을 건네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계는 철저히 정부의 시선 밖에 존재했다.
지난해 9월 신선채소 가격이 전년보다 52.5%나 급등했었다. 올해 1월까지 두 자릿수 증가폭이 이어지면서 장바구니 물가를 흔들었다.
정부는 올해 1월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서다.
뜨거운 감자로 '물가 총대'를 멨던 계란 가격은 미국산을 들여와 진화하고, 가격 급등으로 진작부터 빨간불이 들어온 채소값은 물량확대로 틀어막았다. 사태가 터진 이후 장바구니 물가 잡기에 나선 셈이다. 그동안 가계는 폭등한 물가를 고스란히 짊어져야만 했다.
결정권자의 의지 있는 지시 한 번이 왜 이리 늦어진 것인가. 외풍이 거셀 때 그들의 중심이 가계, 국민이 아니었던 탓이다.
한 발 늦은 정부의 뒷북 대응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이 보복조치를 강화해나갈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된 지 8개월 만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WTO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언급했다.
일부 기업들 피해는 이미 현실화됐고, 중국인 관광객 발길마저 끊어져 자영업자들 신음도 커진 뒤다. 이마저도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당장 관련 조치(WTO 제소)를 취하기 어렵다고 밝혀 부처 간 입장차가 나타난 전형적인 엇박자 행정을 보여줬다.
이는 이미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결정권자들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꼬리표를 떼려 하는 자와 새 정부 사람이 되기 위해 줄을 보고 있는 자가 엉킨 관가에서 국민과 가계의 어려움은 뒷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외풍'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관가 현주소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귀중품이 과연 국민이었는지에 대한 대답이 아쉬울 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