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진지해질 듯하면 유쾌해진다. 아재 감성(?)을 자극하는 말장난식 개그가 난무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나오는 배우들의 재치는 이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개념 없는 미국 유학생부터 혀 짧은 복싱 코치까지 코믹 요소 가득한 캐릭터가 더해져 공연 내내 관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연극 ‘유도소년’의 이야기다.
연극 ‘유도소년’은 전북체고 유도선수 경찬(박정복·허정민)이 1997년 고교전국체전에 출전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뜨겁고도 풋풋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젝스키스의 ‘폼생폼사’, HOT의 ‘캔디’ 등 90년대 인기가요들이 공연 중간에 삽입돼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감성을 담고 있다.
이야기의 큰 흐름은 여자 주인공 화영(김보정·안은진)을 두고 경찬과 민욱(신성민·이현욱) 사이에서 벌어지는 삼각관계다. 제목은 ‘유도소년’이지만 막상 내용을 보면 유도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등장인물 간의 사랑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요셉(조훈·한상욱)과 태구(박강섭·신창주) 사이에 벌어지는 브로맨스(브러더와 로맨스를 합친 신조어로 남자들끼리 갖는 매우 두텁고 친밀한 관계를 뜻함)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하지만 유도 연기 자체는 깨나 실감나게 연출됐다. 낙법, 업어치기, 메치기 등 다양한 유도 기술들이 자연스럽게 선보였고 도복의 띠를 매는 방법이나 도복을 정리하는 방법도 세세하게 묘사돼 세심한 연출력이 돋보였다. 실제로 배우들은 진정성 있는 연기를 위해 약 두 달 동안 본인의 종목을 연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 순수했던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화영에게서는 웬지 모를 짜증과 설렘이, 첫사랑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경찬과 민욱에게서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오글거리는 말투와 한껏 멋냈지만 지금 보면 촌스러운 복장으로 능청스럽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찬과 민욱의 캐릭터는 이번 작품의 백미(白眉)다. 전라도 출신의 경찬과 서울 출신의 민욱의 대조는 두 인물의 차이를 더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관객의 더 큰 웃음을 유발한다.
이와 함께 요셉과 태구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후배이지만 어눌한 한국말로 선배인 경찬을 은근히 골탕 먹이는 요셉은 순수하지만 당돌한 매력을, 요셉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경찬을 누구보다 따르는 태구는 따뜻한 인간미를 보여준다.
연극 ‘유도소년’은 남녀노소 누가 봐도 약 2시간 동안 부담 없이 실컷 웃다 갈 수 있는 공연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몇몇 기억에 남는 장면이 유쾌한 여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공연은 5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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