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경제 주진 기자 =“국정원은 국가를 닮고 국가는 국정원을 닮는다.”
대선 개입, 정치 사찰, 간첩 조작 등 인권침해와 공작정치의 대명사로 한국사회 적폐 중의 적폐로 꼽혀온 국가정보원을 이번에는 꼭 바꾸자는 국민적 요구가 커지고 있다.
1970~80년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정권 때는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간첩단 사건이 터졌고,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터진 ‘북풍’ 사건은 국정원이 벌인 대표적인 정치공작이었다.
2012년 대선 때 국정원 댓글 사건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국정원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관련 정상회담 발언록을 공개하고, 채동욱 검찰총장 관련 정보를 제공하며 노골적으로 정권 보위에 나섰다. 지난해 박영수 특검에 의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보수단체 지원, 국민연금 정보수집 후 삼성 유출, 대법원장과 지법원장 사찰, 헌재와 법원 사찰 시인 등 국정원 관련설은 줄을 이었다.
국정원은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중앙정보부 시절 이래 수사권까지 가진 매머드급 국내외 통합정보기관으로 군림하고 있다. 1987년 이후 민주화 30년 세월을 거치면서도 정치 개입과 인권 침해를 일삼는 국정원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국민 사찰, 선거·정치 개입, 간첩 조작, 종북몰이 등을 해온 국정원의 조직과 인력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국정원의 국내 파트를 폐지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처럼 대북·해외·테러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후보를 비롯해 각 정당 대선 주자들과 정치권은 국정원의 바람직한 개혁 방안으로 국내 파트를 없애고 국외와 대북정보 전담조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보 보수’ 세력이 계속해서 국정원의 첩보능력을 약화하고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한, 국민의 안전과 평화는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재 북한 핵개발과 사드(THAAD) 남한 배치,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중국의 군사강국화에 따라 외교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고, 전 세계는 첨단 산업 분야 등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첩보 전쟁’이라 할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CIA, 영국 MI-6, 이스라엘 모사드, 독일의 연방정보국(BND) 등 세계 선진 정보기관을 참고하여 국정원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그 핵심은 ‘권한 제한, 인재 양성, 임무 분산, 조직·예산 공개’다. CIA는 국가비밀정보국, 정보분석국, 과학기술국, 지원국으로 임무를 분산해 효율적인 조직 운영을 꾀하는 것이다.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인 장유식 변호사는 "수사권과 국내정보 수집권에 대한 새로운 디자인 없이는 국정원은 절대 개혁되지 않는다"며 "수사권의 분리는 국정권 '탈권력화'의 필수전제이고 국정원은 수사권을 내려놔야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사례로 "미국의 CIA, 영국의 MI-6, 독일의 BND, 이스라엘의 모사드 등 주요 국가의 정보기관은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특히 독일의 경우 수사권을 보유했던 과거 나치 정권 정보기관의 폐해를 경험 삼아 BND는 수사권은 두지 않고, 필요할 경우 경찰과 협조해 자료를 받는 등 상호 긴밀한 협조를 통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변호사는 "국정원의 국내정치 정보수집, 사찰 기능을 없애고 국외정보와 대북정보를 전담하는 조직으로 재편하되 국내보안정보는 해외정보 등과 관련성 있는 정보일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수집할 수 있도록 하자"며 "국정원의 보안업무 기획·조정권한은 폐지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로 이양하자"고 제안했다.
국가정보원에 대한 의회의 통제를 가능하도록 예산회계특례법 폐지, 국가정보원법 개정 등의 입법조치와 민간 참여를 통한 통제를 위해 가칭 '정보감독위원회'의 신설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종훈 의원(무소속·울산 동구)은 "국회 정보위원회의 내용을 타 상임위처럼 공개하고, 비밀의 생산·보호·해제 등 비밀관리 실태에 대한 국회 보고와 예산심의권을 실질화해서 국회가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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