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의 행복한 경제] 고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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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0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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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


핀란드는 연구 대상이다. 배울 점이 많다. 정부 정책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버거운데, 이 나라는 가축 사육에도 엄격한 윤리적 기준을 적용해 동물도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이 나라에서는 닭, 오리, 돼지, 소 등에 대해 ‘농장형 사육’이 전면 금지돼 있다. 모든 가축에 성장촉진제, 예방용 항생제 투여도 금지돼 있다. 그런데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률이 0%다. 통제가 어렵다는 살모넬라균 발생률도 0.1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08년 동물복지 국제심포지엄이 열렸고, 2015년 7월 동물복지를 위한 국회의원 모임이 사상 최초로 결성되기도 했다. 동물복지 관련 다수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경제 논리가 앞서는 대규모 농장형 사육이 대세다. 그래서 한 마리 값에 두 마리를 준다는 치킨 광고가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게 싼 게 아니다. 원자력 발전이 싼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싼 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조류인플루엔자와 구제역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면서 동물과 국토가 신음하고 있다. ‘살처분’을 한답시고 애꿎은 동물들이 산 채로 묻히고 있다. 관련 식당과 소비자도 아프다.

핀란드는 1970년대부터 추진한 동물복지 정책으로 ‘가축질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고, 고부가가치 ‘오메가3 돼지고기’를 수출하는 나라가 됐다 30여년이 흐른 지금은 ‘정부와 농부, 기업, 동물 모두 행복해졌다’고 한다. 핀란드만 ‘동물복지’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영국, 네덜란드를 비롯한 EU(유럽연합) 회원국과 미국에서도 ‘동물복지’ 운동이 널리 퍼져 있다. 스타벅스, 쉐이크쉑 햄버거 등 미국 대형 식음료 회사들도 ‘동물복지’ 육류 사용을 의무화했다.

우리 집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어느 날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졌다. 조금 있더니 계란도 사라졌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우유가 사라졌다. 요즘엔 생선조차 사라졌다. 둘째 아이 때문이다. 애완동물을 사랑하더니 결국 고기를 싫어하게 됐다. 동물의 사육과 도살 과정을 보면 도저히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의 환경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서도 육류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소에 고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딸의 주장을 거역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다. 국내에서 소수파 중의 소수파인 채식주의자와 동물복지주의자에게 나 한 명이라도 더 동조해준다면 얼마나 기뻐할 것인가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그 옛날 천동설이 대세일 때 지동설을 주장한 사람은 또 얼마나 소수였고 힘들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장이 모이고 모여서 여론이 되고 정책이 된다. 법안으로 만들어지고 집행 단계에 도달하면 성공이다. 핀란드가 그런 성공의 길을 걸었다.

어느 날 둘째 아이가 녹색당 당원이 됐다. 환경과 생태를 보호하고 살리는 일에 법과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된 것이다. 소수자로서 그리고 비주류로서 어려운 길을 걷겠다는 딸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럽다.

4월은 순우리말로 ‘잎새달’, 물오른 나무들이 저마다 잎을 돋우는 달이다. 나무도 그러하거늘 동물들 또한 4월의 봄이 얼마나 가볍고 아름다울까? 식물, 동물, 사람, 그리고 주변 환경 모두 하나의 생태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식물, 동물, 사람, 그리고 환경 모두의 건강이 서로 독립돼 있거나 서로 다르거나 하지 않다는 핀란드의 ‘원헬스’(one health) 정책에 우리는 언제쯤 공감할 수 있을까? 사람복지에 관해서도 우리 공동체 안에서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작금의 현실을 보면 동물복지를 향해 갈 길이 참으로 멀기만 하다. 동물복지 개념에 충실하게 사육되고 도축돼 먹기에 덜 미안한 고기가 우리 집 식탁에 다시 오르는 날은 언제쯤일까? 30년?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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