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현대·기아차 전체판매 대수의 23%를 차지하는 글로벌 최대시장이다. 현대차는 이미 중국에서 판매량 감소 50%를 넘어 위험한 판매절벽을 향해가고 있다.
2012년 중·일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영유권 문제로 관계가 악화됐을 때도 일본 자동차의 중국판매량이 70%까지 빠졌고, 이를 회복하는데 2년 이상 걸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현대·기아차와 동반 진출해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벤더 업체는 문을 닫게 돼 있다. 우리의 기업들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불구하고 해결을 위해 누구 하나 나서지 않고 있다.
정·재계는 5월 대선결과만 바라보고 있는 '멍 때리기' 상태로 시간만 보내고 있다. 전직 대통령에 의해 이뤄진 매끄럽지 않은 외교가 기업에게 엄청난 재앙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사드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 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게 등 돌린 중국인들의 마음을 되돌리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중 관계가 정상화되기까지 모든 고통은 우리 기업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동양에서는 국가나 기업을 움직이는 것이 시스템보다 사람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더욱 그러하다. 한·중 수교 25주년을 맞이하고 있으나, 한국에는 중국 고위층과 절친한 '관시'(關系·인맥)를 가진 인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간에 공식적인 관계가 막히면 비공식적인 접촉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평소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친하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전혀 없다. 중국 고위층과 제대로 연결되는 인맥이 없는 것이다.
중국은 정치와 경제가 분리된 나라가 아니다. 경제는 계획경제의 성격이 강한 나라다. 중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려면 정부관료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경영자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정치적으로 꼬이면 경제에 직접 영향이 나타나는 나라이기 때문에 경영자 일지라도 대(對) 정부 관시는 필수적이다. 사드 보복에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받는 영향은 심각하다.
중국인들이 중시하는 관시는 중국의 문화 현상으로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계 미국인 학자 뤄야둥 선생은 "중국은 기본적으로 사회 및 경제적인 질서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강력하고 질서 있는 계층구조로 구축된 관시사회(關係社會)”라고 했다.
관시는 중국문화에 배태돼 사회적 상호작용 및 비즈니스 업무 수행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관시는 개인이나 조직 차원으로 나눌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대 정부 관시다. 국가 최고지도자는 관시의 최고점에 있으며, 이들과 관시를 맺고 유지한다는 것은 최고의 관시 자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중앙 고위층과의 관시는 성(省)급 정부의 관료들과 연결된다. 이러한 계층적 구조는 지방의 시(市)·현(縣)·진(鎭)·향(鄕) 정부까지 거미줄 같이 연결된다. 이것이 중국의 대정부 관시의 계층적 구조다.
관시는 하루 아침에 명함을 주고 받았다고 맺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며 호의를 주고 받고 우의를 쌓아야 한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중국을 잘 아는 인재를 키우고 그들이 중국 친구와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관시는 감성적·의무적·비공식적·장기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유지관리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드 사태는 기업이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이 도래하면 기업에게는 위기이기는 하지만, 역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계기가 강제로 주어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기회가 된다. 경쟁자가 모방하기 어려운 신기술 개발, 새로운 마케팅전략 시행, 현지화 추진, 중국 내수시장 확대, 사회공헌 활동 강화 등의 자구적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중국에서 이 위기를 극복한 기업은 반드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많다. 이번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조평규 단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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