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원라인’(감독 양경모·제작 ㈜미인픽쳐스 ㈜곽픽쳐스·배급 NEW)은 평범했던 대학생 민재(임시완 분)가 전설의 베테랑 사기꾼 장 과장(진구 분)을 만나 모든 것을 속여 은행 돈을 빼내는 신종 범죄 사기단에 합류해 펼치는 짜릿한 예측불허 범죄 오락 영화다.
이번 작품에서 박병은은 신종 범죄 사기단 멤버 중에서도 성공에 대한 욕심이 가장 강한 박실장 역을 맡았다. 거리낌 없이 부와 명예가 좋다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성공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과격함까지 보이는 인물이다. 야망에 사로잡혀 변화하는 박 실장은 박병은이기에 더 강렬하고 입체적이었다.
영화를 본 소감은?
- 사실 시나리오를 볼 때 걱정했던 부분이 있다. ‘너무 많은 인물이 나와서 혹시 버려지는 인물들이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모든 게 기우였다. 많이 출연하든 잠깐 출연하든 모든 인물이 분명한 캐릭터를 가졌더라. 굉장히 힘든 일이다. 예전에 ‘암살’을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이번 작품을 통해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양경모 감독님이 입봉작인데도 잘 살린 것 같다.
- 극 중 민재의 아버지로 출연하는 배우 이석호가 인상 깊었다. 저와 17년 정도 알고 지낸 형인데 이번 작품을 위해 17kg을 감량했더라. 많은 신에 등장하지 않는데 ‘삐쩍 마른 몸’이라는 지문을 읽고 살을 빼왔다고 했다. 그 열정이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석호 배우의 체중감량이 많은 자극을 줬나보다
- 자극 정도가 아니라 충격적이었다. 아니 충격도 넘은 느낌이다. 예전에 ‘암살’을 찍을 당시에 이정재 선배를 보고도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다들 저녁을 먹을 때 혼자 방울토마토 세 알을 먹는 거다. 저는 이제까지 캐릭터에 따라 극한으로 살을 빼본 적이 없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동료 배우들의 이런 열정이 저를 자극하는 것 같다.
체중감량이 필요한 캐릭터라고 생각되면 박병은 역시 주저 없이 다이어트를 할 것 같은데?
- 그렇다면 저는 방울토마토 두 개만 먹을 거다.
‘원라인’에는 지문을 읽고 나름의 디테일을 준비한 배우들이 많은 것 같다. 박병은은 어땠나?
- 지문을 보고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디테일을 만들겠지만, 작은 디테일 때문에 큰 것을 놓치긴 싫었다. 박 실장이라는 캐릭터는 ‘왜 끝까지 앞으로 가느냐’가 중요했다. 이 캐릭터를 준비할 때는 수백 가지의 이유들을 만들었었다. 하지만 촬영가기 전 다 지워버리고 굵직한 선만 가지고 촬영에 임했다.
인물의 전사나 캐릭터의 성격을 세밀하게 구축하는 편인가보다
- 그렇다. 특히 촬영 전에는 캐릭터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한다. 말도 안 되는 걸 많이 생각했었다. 박실장은 어릴 적 유복한 집에서 자랐을까? 군인 출신이라서 싸움을 잘하는 걸까? 이런 오만 가지 생각을 한다. 결국 한 가지 틀을 가지고 밀어붙이게 됐지만.
이런 세밀함이 연기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 저는 사람들의 특이한 면면들을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특이한 말투나 행동 같은 것들. 그래서 ‘암살’ 때, 핸드크림을 바르는 카와구치가 만들어진 거다. 군인이 핸드크림을 바르는 모습에서 결벽증이 느껴지기도 하고, 여성적인 면이 있는 것 같더라. 임팩트 강한 질감을 주려고 기억해두었던 디테일이었는데 필살기처럼 ‘암살’에 적용하게 됐다.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필살기가 있었을까?
- 외적인 모습이었다. 반 뿔테 안경을 썼는데, 그런 안경이 어찌 보면 국회의원이나 대기업 회장이 쓰는 디자인 아닌가. 권력의 상징이라고 생각했고, 박실장은 그런 권력을 쥐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안경을 쓰게 됐다. 눈도 엄청 좋을 것 같은데 억지로 쓴다는 설정이었다.
평소 성격을 보면 작품에서도 애드리브를 즐길 것 같은데
- 하지만 이번 캐릭터에서는 애드리브를 하지 않았다. 시나리오에 꼭 맞게 행동했다. 송차장(이동휘 분) 같은 캐릭터라면 애드리브가 자연스러웠겠지만 박 차장은 무게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순간 생각나는 애드리브보다는 철저하게 대사와 틀을 맞추려고 했다. 저 대신 동휘가 (애드리브를) 차지게 잘 해줬다.
이동휘의 애드리브가 사실 박병은에게서 나온 거라던데?
- 몇 개 던져 준 거다. 선배로서. 하하하. 기태(박정환 분)가 물걸레질을 하길래 ‘넌 컬링 선수야?’하고 놀린 것을 동휘가 이삭 줍듯 집어갔다.
개그 본능이 엄청난데 정작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지는 않는 것 같다
- 코미디 영화를 해보고 싶다. 대본 없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성우 형, 오정세와 함께 코미디 작품에 꼭 출연하고 싶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너무 웃겨서 경외할 지경이다.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터트릴 때가 있다.
하정우와 절친한 사이라더니, 개그 스타일도 비슷하다
- 비슷하다. 그래서 더 냉정하다. 가끔 내가 하면서도 ‘아차’하는 농담이 있지 않나. 그럴 때마다 귀신같이 지적한다. ‘형, 실망이에요. 설마 웃기려고 한 건 아니겠죠?’라고 날카롭게 묻는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다. 정우가 말도 안 되는 걸 던지면 ‘정말 실망’이라고 말한다. 분명 배울 점이 있다. 그만의 묵직한 개그가 있다. 마음을 울리는 개그다.
연기가 아니라 개그적인 면에서 배울 점이?
- 하하하. 물론 연기도 배울 점이 있다. ‘암살’을 찍을 땐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당시 정말 열심히 카와구치 역을 준비했는데 촬영장의 상황이나 여건에 안 맞아서 제대로 (연기력을) 발휘하지 못했었다. 그때 정우가 ‘형, 영화는 여러 사람이 하는 거고 100일을 준비하든 1년을 준비하든 맞춰가는 게 배우’라며 조언해주더라. ‘상대 배우의 컨디션에 따라, 리액션에 따라 형의 연기가 바뀔 수 있도록 여지를 충분히 갖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해줬다. 영화를 하면서 그 말이 참 중요한 말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철두철미하게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스타일인가보다
- 그렇다. ‘암살’은 특히 더 그랬다. 대사가 전부 외국말이었으니까. 저는 오디션을 볼 때부터 이미 대본을 다 암기하고 있었다. 정말 절박했었으니까. 이 캐릭터를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애를 많이 썼다. 카와구치에 관해 리포트를 써갈 정도였다. 카와구치의 인생, 가족관계, 아버지와의 관계까지 생각하고 정리했었다.
열심히 준비한 만큼 지난해부터 바쁘게 작품활동 중인데
- 좋은 일이다. 낚시를 정말 좋아하는데 올 4월은 건너뛰어야 한다. 이제 곧 영화 ‘특별시민’이 개봉하고, 드라마 ‘추리의 여왕’과 영화 ‘악질경찰’ 촬영을 앞두고 있다.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찍어야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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