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과천에 거주하는 한 주부가 집에서 쓰다가 모아둔 캔과 페트병을 장바구니에 가득 담아, 자판기처럼 생긴 인공지능(AI) 쓰레기통 ‘네프론’ 앞에 서서 페트병을 버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과천 시민회관 입구에 설치된 네프론에 버린 페트병과 캔의 갯수를 세며 적립되는 현금 포인트를 일일이 확인하는 모습이 아주 능숙해 보였다.
‘네프론’의 액정화면에 표시된 적립금은 900원. 이 주부는 “그냥 버리느니 돈으로 바꾸는 게 낫죠. 쓰레기를 재활용해 돈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연신 웃음을 보였다.
자판기처럼 생긴 ‘네프론’은 AI 기반의 순환자원 회수용 로봇이다. ‘네프론’은 2015년 6월에 설립된 신생 스타트업 수퍼빈이 KAIST의 AI ‘뉴로지니’ 기술을 이전 받아 10개월의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됐다.
‘네프론’의 이용은 매우 간단하다. 액정 화면의 시작 버튼을 누르고, 오른 쪽 구멍에 가지고 온 캔과 페트병을 하나씩 넣으면 딥러닝(심층학습) 기술이 적용된 회선신경망(CNN)이 영상을 통해 캔과 페트병을 인식해 분리하고 압착한다.
투입한 쓰레기의 압착이 끝난 후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모든 정산이 완료된다. 캔은 1개당 15원, 페트병은 10원. 수퍼빈 홈페이지에 가입해 본인확인 과정만 거치면 현금이 지급된다. 향후 개선 작업을 통해 통장으로 자동 입금되는 시스템이 추가될 예정이다.
현재 '네프론'은 과천시내 주요 공공시설 5곳에 설치돼 시민들이 직접 이용하면서 필드테스트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과천 시민들이 ‘네프론’의 정체를 소문으로 알게 되면서 이용자는 급격히 늘고 있다.
이날 과천에서 만난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캔과 페트병은 '네프론' 한 대당 3000개 정도 수거할 수 있으며, 용량이 차기 전에 스마트폰을 통해 알림이 온다”며 “요즘은 하루 100~150건 정도 이용되고 하루 평균 700개씩 재활용 쓰레기가 수거된다”고 말했다.
'네프론'은 아직 캔, 페트, 빈병을 분리수거하는 데에만 활용되고 있지만, 앞으로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다양한 활용도로 맞춤화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김 대표는 “예를 들어 병원에서 '네프론'을 활용해 의약품 병을 분리 수거할 수도 있고, 쓰고 남은 화장품 공병을 회수하는 등 사용자에 맞게 맞춤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활용 수거라는 실생활 밀착형 아이템과 기술기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네프론'을 설치하려는 지자체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과천시에 이어 구미시와 경상북도 의성군도 올해 '네프론'을 도입하기로 했다.
'네프론'은 지난달 31일 미래창조과학부가 개최한 ‘제1회 미래성장동력 챌린지데모데이’에서 최종결선까지 올라 쟁쟁한 스타트업들을 모두 제치고 최우수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해 그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고경모 미래부 창조경제조정관은 “수퍼빈의 AI 쓰레기통은 단순한 실생활 문제 해결 능력을 넘어 자원절약, 재활용이라는 교육적 측면과 기술이 잘 접목됐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네프론'을 통해 수거된 재활용품을 더 좋은 소재로 발전 시킬 수 있는 후속 소재화 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있다”며 “'네프론'을 중심으로 관련 앱, 서비스, 컨테이너를 활용한 문화공간 프로젝트로 '네프론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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