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5·9 장미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은 시대를 꿰뚫는 창이다. 회귀투표 성격이 강한 총선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이 때문에 역대 대선마다 체제를 뒤흔드는 시대정신이 존재했다. 해방 직후 ‘건국화’를 시작으로 1970∼80년대 ‘산업화’, 1990년대 ‘민주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갈 길은 멀다. 퇴행적 정치도, 1%가 99%를 독점하는 경제 권력도 여전하다. 이번 대선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는 첫 번째 선거다. 구체제와의 결별을 선언할 새 시대 장자를 맞는 선거라는 얘기다. 이에 본지는 5·9 대선의 숨은 부분을 찾아 ‘공유·분권·자치·통일’ 등 포스트 신(新) 질서를 모색한다. <편집자 주>
대선후보 TV토론은 그 자체로 메시지의 총체다. 각 후보들은 자신의 통치 철학과 핵심 국정과제를 공중파 등 통신채널을 통해 전파한다. 후보와 유권자 사이를 잇는 ‘메신저 역할’이다.
동시에 혹독한 국민적 검증의 장이다. 각본 없는 후보의 민낯을 보여준다. 유권자에게는 일종의 ‘메시지의 보고’인 셈이다. 5·9 장미 대선에서는 한국 대선 사상 첫 스탠딩 방식이 도입됐다. 이번 TV토론이 단순한 ‘스냅사진’(변화하는 장면을 인위적으로 연출하지 않고 재빨리 촬영하여 기록한 사진)을 넘어 ‘메시지 전쟁’으로 불리는 이유다.
다만 TV토론의 승자와 대선전쟁 승자는 일치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담긴 TV토론의 정치적 함의를 풀면 대선 판세가 보인다.
25일 정치전문가들이 꼽은 TV토론회의 핵심적인 특징은 ‘기대치 게임’이다. 말 그대로 TV토론 전 형성된 기대치보다 높은 후보가 고평가를 받거나, 낮은 후보가 저평가를 받는 현상이다. TV토론 점수는 후보의 능변 여부와 무관하다.
2012년 대선후보 TV토론 때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공격당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은 이유도 이런 까닭이다. 변호사 출신으로 진보진영의 새로운 아이콘이었던 이 후보에 대한 기대치는 높았던 반면, 기자회견조차 회피한 박 후보에 대한 TV토론 기대치는 낮았다. 이 후보에게 TV토론은 ‘잘해야 본전’ 게임에 불과했다. 때때로 ‘TV토론 승자=대선 패배’ 공식이 성립하는 이유다.
미국 대선도 마찬가지다. CNN은 TV토론 전 승자를 예상하는 사전조사를 한다. 기대치 게임에서 이겼던 1996년 밥 돌 공화당·2000년 앨 고어 민주당·2004년 존 케리 민주당·2008년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각각 빌 클린턴 민주당·조지 W 부시 공화당(2000년과 2004년)·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에게 패했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기대치 게임의 승자였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이른바 기대치 게임의 ‘역설’이다. 이날까지 총 네 차례 토론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능변인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기대치 높인 安 지지율 하락···점수 높은 柳 사퇴 압박
이번 대선에서도 기대치 게임의 실상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대세론을 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양자구도 균열이 발생한 것은 첫 번째 TV토론인 지난 13일 ‘SBS·한국기자협회’ 주관 토론회 직후다.
직전까지 문 후보는 안 후보의 맞짱 양자토론 공세에 시달렸다. 기대치를 스스로 높였던 안 후보가 첫 공중파 중계 토론회에서 긴장한 모습을 노출하자, 일부 지지층의 러시가 시작됐다. 각 후보의 미래 비전이나 공약보다 후보자의 분위기, 이미지 등이 기대치 게임의 승부를 가르는 것도 양 후보의 희비에 한몫했다.
TV토론의 또 다른 특징은 ‘지지층 강화 효과’다. 이른바 ‘확증편향 프레임’이다. 다수의 유권자들은 최종 선택의 보강 차원에서 TV토론을 본다. 이미 후보를 정한 뒤 상대방의 약점 노출 여부를 발견하기 위한 수단으로 TV토론을 활용한다는 얘기다. TV토론 이후 안 후보의 “갑철수냐, 안철수냐”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입니까” “실망입니다” 등의 어록이 탄생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토론회 이후 결속력이 강한 문 후보의 지지표는 뭉친 반면, 안 후보 지지표는 분산됐다”며 “토론회에서 안 후보의 정체성 논란이 부각되면서 극적 포인트를 맞은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는 두 가지다. 특정 후보와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과 지지 후보를 찾아 떠다니는 ‘부유층’이다.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지난 23~24일 전국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마지막 날 공표한 결과(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2%포인트,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응답자의 20.4%가 ‘TV토론 후 지지 후보를 바꿀 마음이 들었다’고 답했다. 이는 직전 조사(지난 15~16일) 때의 10.6%보다 두 배가량 높은 수치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TV토론=지지층 강화’라는 게 정설이었지만, 이번 대선은 다르다”라며 “문 후보를 빼고는 본선에서 검증을 받은 후보가 없다.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 이유가 있다”고 전했다. 제3차 TV토론회의 시청률은 38.5%(닐슨코리아 집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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