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보수진영의 유력 후보를 지지하는 것 외에 선택지를 받아본 적이 없는 TK 유권자들로선 생소한 경험인 셈이다. 이들은 연령을 막론하고 반문(반문재인) 정서를 기반으로 뭉쳤지만 하루 단위로 급변하는 대선 판도를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26일 기자가 대구에서 만난 유권자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반박(반박근혜), 반문(반문재인) 정서를 꼽을 수 있었다.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대구 유권자들은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동대구역에서 만난 직장인 최승호씨(32)는 자신을 대구 토박이라고 밝혔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아무리 대구라도 해도 비리를 저질러 탄핵을 당한 박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차기 대선주자에 대해선 “문 후보를 제외하면 안 후보에게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라서 “홍 후보는 ‘돼지흥분제’ 사건만 봐도 최소한의 품격도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달서구 두류공원에서 만난 김모씨(56)도 “지난 대선에서 박 전 대통령을 뽑았다”며 “촛불집회 때만 해도 정말 억울한 줄 알고 믿었는데 아무 준비 없이 구속까지 되는 걸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또 “홍 후보는 지지율이 낮아서 고민이 되고, 안 후보는 TV토론을 보니 아직 ‘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일단 계속 지켜볼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대구에서 26년 동안 택시기사를 하고 있는 양유순씨(59)는 “손님들 중에 박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은 극소수 노인들 말곤 못 봤다”며 “문 후보는 ‘빨갱이’ 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아무래도 아직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대구 유권자들은 반문 정서를 기반으로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놓고 안 후보와 홍 후보 사이에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본격 TV토론이 펼쳐지기 전 TK 표심을 기반으로 안 후보는 30%를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실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며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 자릿수에 불과한 지지율에서 최근 두 자릿수로 급부상하고 있는 홍 후보로 표심이 일부분 이동했지만 ‘막말 이미지’로 인해 수도권에서 한계가 있다는 심리가 유권자들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TK 또한 여느 지역과 다르지 않게 세대별 투표 성향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고령층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애잔함을 느끼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 같은 감정이 곧 박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홍 후보에게 표심으로 이어졌다. 반면, 청년층은 정파를 떠나 탄핵 이후 정권 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 대다수였다.
이날 저녁 8시쯤 홍 후보는 대구 지역 유세를 위해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서문시장에서 30년간 국숫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순자씨(65)는 “탄핵 사태 이후 이쪽 사람들 대부분이 정치에 관심도 두지 않고 투표도 안 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홍 후보 쪽으로 많이 몰리고 있다”며 “정신없이 탄핵이 몰아치던 때는 몰랐지만 지금 보니까 최순실이 다 기획한 걸로 나오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홍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의 억울함도 조목조목 잘 지적하는 걸 보고 홍 후보를 밀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국수를 먹기 위해 식당에 들른 정모씨(75)는 자신을 홍 후보가 졸업한 영남고 선배라고 소개하면서 “탄핵은 다 최순실이 짠 각본에 대통령이 당한 것”이라며 “그래서 대통령을 배신한 유승민보다 홍 후보를 찍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후보가 지지율이 좀 낮아서 걱정됐는데 들어보니까 ‘요즘 여론조사는 여론조작’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문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선 당연히 홍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경북대 근처에서 만난 대학생 류재호씨(27)는 “집안 어른들은 아무래도 문 후보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며 “집안 분위기 때문에 처음엔 안 후보에게 마음이 갔는데 지금은 문 후보에게 투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이 안 된 홍 후보는 아예 고려 대상에도 없었고, 안 후보는 TV토론을 보고 나서 실망했다”며 “문 후보가 기득권 개혁을 잘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체로 노령층은 ‘당선 가능성’을 놓고 전략투표에 대한 고심이 깊은 반면, 새 정치를 지향하는 안 후보에게 기대를 걸었던 청년층은 TV토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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