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5·9 장미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은 시대를 꿰뚫는 창이다. 회귀투표 성격이 강한 총선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이 때문에 역대 대선마다 체제를 뒤흔드는 시대정신이 존재했다. 해방 직후 ‘건국화’를 시작으로 1970∼80년대 ‘산업화’, 1990년대 ‘민주화’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갈 길은 멀다. 퇴행적 정치도, 1%가 99%를 독점하는 경제 권력도 여전하다. 이번 대선은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지는 첫 번째 선거다. 구체제와의 결별을 선언할 새 시대 장자를 맞는 선거라는 얘기다. 이에 본지는 5·9 대선의 숨은 부분을 찾아 ‘공유·분권·자치·통일’ 등 포스트 신(新) 질서를 모색한다. <편집자 주>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현행 헌법 제20조 2항)
대한민국은 ‘정교분리’ 원칙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다. 다만 ‘정교분리’와 ‘정교유착’의 경계선은 불명확하다. 분리와 유착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선거 때 한층 심화한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인 정교의 특수한 ‘공생 관계’ 때문이다. 선거 과정에서 종교 정책이 무력화되는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종교인(성직자) 과세’가 대표적이다. 지난 1968년 국세청이 처음 추진한 이래 번번이 무력화됐던 ‘소득세법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 3년차 말인 2015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종교계 반발을 의식, 2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치기로 했다. 하지만 5·9 대선 이후 누더기로 전락할 조짐이다.
◆종교인 과세, 文 ‘보완’-安 ‘여론수렴’··· 沈만 찬성
27일 원내 5당 대선 캠프 측에 따르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주자들은 종교인 과세에 대해 ‘보완’ 및 ‘시행 유보’ 입장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은 종교인(성직자) 과세에 반대하지 않지만, 하반기 세법 시행령 개정 때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호중 민주당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정책본부장은 “세금 공약에 종교인 과세는 없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은 ‘여론수렴 절차’, 홍준표 자유한국당·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측은 ‘시행 유보’ 쪽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 가운데 누가 당선되더라도 종교인 과세의 속도조절이 불가피한 셈이다. 문 후보와 심 후보는 천주교 신자, 안 후보는 무교, 홍 후보는 개신교, 유 후보는 불교 신자다.
2년 전 통과한 종교인(성직자) 과세의 주요 내용은 △근로소득 선택 시 4대 보험 적용 △종교인 소득 선택 시 필요경비 공제(소득을 구할 때 공제되는 경비) 혜택 △세무당국의 종교인 소득열람(종교법인 제외) 등이다. 이 중 필요경비 공제 혜택은 연 소득 4000만원 이하의 경우 필요경비 80%, 4000만~8000만원 60%, 8000만∼1억5000만원 40%, 1억5000만원 초과 20%다.
◆종교인 비과세, 정부 수립 이후 ‘관습법’
종교인(성직자)의 비과세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관습법(불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종교인(성직자)은 지난 70년간 ‘국민개세주의’ 원칙의 예외였다는 얘기다. 정치권의 종교인 표심 ‘눈치 보기’와 일부 종교인의 ‘정치 권력화’ 등이 맞물린 결과다.
통계청의 ‘2015 인구주택총조사 종교인구 표본 집계’에 따르면 신앙생활을 하는 종교인은 2155만명(43.9%), 무종교 인구는 2750만명(56.1%)이다. 종교별로는 개신교 968만명(19.7%), 불교 762만명(15.5%), 천주교 389만명(10.6%) 순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선거에서 종교인 표심의 위력은 강하다”라며 “유력 후보들이 대형 교회 등을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특정 후보의 당선과 관계없이 종교인 과세와 더불어 핵심 과제인 ‘종교법인법 제정’ 등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반론도 있다. 종교 지도자와 종교인의 관계가 상하 수직적 관계가 아닌 데다, 종교 역시 시대정신을 담은 사회적 담론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찬종 변호사는 “종교 표심의 실제 영향력이 크지 않다”며 “종교인 과세에 대한 인식이 변한 만큼 개신교나 천주교, 불교 신자 모두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인 표심 눈치 보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대선 막판 핫이슈로 급부상한 동성애 문제도 종교 표심과 무관치 않다. 개신교는 동성애를 죄악으로 보고 차별금지법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문 후보는 4차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한 직후 논란에 휩싸였다. 유력한 대선 후보가 성적 소수자의 성적 지향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접근, 인권 감수성 논란이 대선 돌출 변수로 부상했다. 찬성하면 개신교, 반대하면 일부 진보진영의 반발을 일으키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문 후보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통합정부추진위원회의 토론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동성애 때문에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만큼은 확고하다”면서도 “현실 정치인 상황 속에서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안 후보도 “동성결혼 합법화에 반대한다. 동성애는 찬반 사안이 아니다”라면서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선 ‘묵묵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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