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학의 ‘공부에 관한 공부’] 하트 크레인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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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08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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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학 더굿북 대표]


미국이 낳은 위대한 시인 중 한 사람인 해럴드 하트 크레인(Harold Hart Crane, 1899~1932)은 33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감각적이고 신비로운 시를 남겼다. 1930년에는 책 한 권에 달하는 거대한 서사시 ‘다리(The Bridge)’를 통해 미국이 이룬 인간의 신화, 브루클린 다리를 감각적으로 노래했다.

브루클린 다리(Brooklyn Bridge)는 뉴욕 맨해튼 섬 남단에서 이스트 강을 건너 브루클린에 이르는 다리다. 놀라운 것은 이 다리의 487m가 현수교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당시 1880년대에 이런 거대한 현수교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런 면에서 이 다리의 완공은 미국의 신화로 충분했다.

브루클린 다리는 1869년 착공해 1883년 5월 24일 개통하기까지 13년 이상의 공사 기간을 거쳤다. 이 다리는 존 오거스터스 로블링(John Augustus Roebling, 1806~1869)에 의해 입안됐다. 베를린공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1850년대부터 4개의 현수교 공사를 직접 주관해 피츠버그와 켄터키 등에 300m 이상의 놀라운 현수교를 건설했다. 뉴욕주는 브루클린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그의 입안을 받아들여 공학장으로 임명해 공사를 지휘하도록 했다.

그는 엄청난 상판의 무게를 견뎌낼 강삭(鋼索, Steel Wire Rope)을 고안해냈다. 강삭은 얇은 여러 개의 강선을 꼰 다음 중앙에 심을 넣고 다시 꼰 것으로, 큰 인장강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 선은 기중기에 장착해 무거운 물체를 들거나 현수교의 본체인 상판을 지탱하는 케이블로 주로 사용된다. 강삭은 로블링의 집념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놀라운 고안품이었다.

하지만 불행이 찾아왔다. 공사를 감독하던 로블링이 발가락 상처를 입은 것이다. 보트사고로 발가락에 상처를 입은 그는 발가락을 절단했지만, 파상풍으로 3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의 아들 워싱턴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브루클린 다리를 완성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도 교각 건설을 감독하려고 무리하게 수중에 들어갔다가 잠수병에 걸려 의사소통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있는 몇 개의 손가락으로 그의 아내와 소통하면서 어렵게 브루클린 다리를 완성해냈다.

우리가 뉴욕에서 볼 수 있는 복층으로 지어진 브루클린 다리는 이렇게 완공됐다. 이는 인간의 창조성과 의지가 아니었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지금도 믿기 어려운 작품이다. 로블링 부자는 자신들이 공부한 세계에 상상력을 더해 인생을 건 작품을 남겼다. 목숨을 걸고 대를 이어가며 노력해도 완성하지 못했을 때는 손가락만으로 의사를 전달해가며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이것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다. 인류에게 긍정적인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

하트 크레인은 완공된 브루클린 다리를 미국의 신화로 노래했다. 하트 크레인은 브루클린 다리를 만들어낸 로블링의 위대한 상상력과 의지를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 언어로 찬양했다. 브루클린 다리를 노래한 하트 크레인도 자기 꿈을 향해 모든 것을 던진 시인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시를 배웠으나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다. 뉴욕으로 간 그는 대학입학을 준비했으나 시에 대한 열정과 사랑 때문에 대학입학을 포기했다. 1926년, 그의 첫 시집 ‘하얀 건물(White Buildings)’과 1930년에 쓴 ‘다리(The Bridge)’가 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 전부다. 멕시코 취재여행을 떠났던 그는 카리브해에서 투신자살하고 말았다. 이렇게 그의 삶도 시가 됐다.

'교각 옆, 네 그림자 밑에서 나는 기다렸다. 어둠 속 네 그림자만이 선명하구나. 이 도시의 불꾸러미는 다 풀리고 이미 눈(雪)은 철의 일 년을 덮는구나. 아, 네 밑을 흐르는 강물처럼 잠자지 않고 바다와 평원의 꿈꾸는 풀밭 위에 걸려 아주 낮게 우리에게 펼쳐지고 우리에게 내려라. 그리고 신을 대신하여 곡선의 신화를 창조하라.' 하트 크레인의 ‘The Bridg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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