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박성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 추방정책을 강하게 집행하면서 불법 이민자사이에서 추방 공포가 최고조에 달했다. 심지어 성폭행을 당하더라도 추방을 두려워한 나머지 신고하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 로스앤젤레스 외곽에 사는 크리스티나는 작년에 남편의 가정폭력을 당국에 신고했다.
그녀는 유(U)비자도 신청했다. 이 비자는 범죄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체류 신분을 따지지 않고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머물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달 변호사에게 더는 U비자 신청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리는 남편보다 자신을 추방할 미국 정부가 더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는 그들(이민세관단속국 직원들)이 나를 찾아내는 게 무서웠다"고 밝혔다.
크리스티나처럼 추방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특히 라티노(라틴아메리카계)가 폭력을 당하더라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올해 휴스턴에서 라티노의 성폭행 피해 신고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0% 줄었다.
아트 아세베도 휴스턴 경찰국장은 "(성폭행 피해 신고 급감은) 사람들이 범죄를 신고하지 않는 출발점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올해 들어 라티노의 성폭행 피해 신고건수는 25% 줄었다. 가정폭력 피해 신고건수도 10% 감소했다.
찰리 벡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장은 "연방정부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감소한 것 같다"고 말해 추방 공포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법적 도움을 제공하는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 법률구조협회에도 도움 요청이 줄었다. 약 20년 동안 법률 지원 활동을 해 온 케이트 마르 집행이사는 "지금처럼 공포의 수준이 높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가정폭력 희생자들을 돕고 있는 로라스 하우스에도 불법 이민자들의 지원 요청이 끊기다시피 했다. 작년까지는 매달 30여 건의 도움 요청이 있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일주일에 한 건도 안 된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의 가정폭력위원회는 1월 이후에 단 2건의 신고만 받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5∼6건을 받았던 것과 대비된다.
이 같은 현상은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이 만든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카운티 가정폭력위원회의 올리비아 로드리게스 집행이사는 "불법 이민자들은 정부 기관에 신고하면 이민세관단속국에도 보고돼 추방당할 것으로 생각해 폭력을 참고 있다"면서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고 안타까워했다.
sungje@yna.co.kr
(끝)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