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특별시민’ 최민식은 아직 목마르다

영화 '특별시민'에서 서울시장 변종구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사진=쇼박스 제공]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도통 만족하는 법이 없다. 1988년 영화 데뷔작인 ‘수증기’부터 ‘구로 아리랑’, ‘쉬리’,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명량’에 이르기까지. 배우 최민식(55)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어떤 작품이든 깊이 몰입하며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지만 만족보다는 아쉬움, 또는 도전에 대한 열망이 컸다.

지난 4월 16일 개봉한 영화 ‘특별시민’(감독 박인제·제작 ㈜팔레트픽처스·배급 ㈜쇼박스) 역시 마찬가지다. 현(現)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 분)가 차기 대권을 노리고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접한 뒤, 최민식은 전에 없던 본격 정치 드라마라는 장르에 빠져들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쿵작쿵작 만들고 신경 쓴다면 괜찮은 물건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이런 정치 드라마가 없었잖아요? 사실 우리나라처럼 다이나믹한 나라도 없는데 말이에요. 하하하.”

최민식이 본 영화 ‘특별시민’의 첫인상은 다소 엉성했다. 미국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나 영화 ‘킹 메이커’ 등 해외작품들로 이미 대중들의 눈은 높아진 터. ‘특별시민’의 허점은 더욱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 '특별시민'에서 서울시장 변종구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사진=쇼박스 제공]

“시나리오보다 더 풍성해진 부분이 많죠. 감독·스태프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영화의 방향도 크게 달라졌어요. 찍다 보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우리도 의기투합해서 ‘하우스 오브 카드’나 ‘킹 메이커’, ‘굿나잇 앤 굿럭’ 같은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아이디어도 많이 냈고 공부도 많이 했죠.”

최민식과 박인제 감독은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정리하는 과정은 치열했다.

“얘기하다 보니까 영화에 담고 싶은 장면이 너무 많더라고요. 씁쓸한 이야기지만 영화에 쓸 만한 실제 사건들이 너무 많잖아요. ‘초밥 신’만 해도 그래요. 세월호 사건 때 생존자를 구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사발면을 먹었던 그분을 떠올리며 만들어냈죠. 그런 일들을 하나하나 꺼내다 보니 담고 싶은 게 너무 많더라고요.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게 힘들었죠.”

최민식의 말처럼 영화의 군데군데에는 현실과 닮은 상황들이 연출된다. 하지만 그는 특정 사건은 떠오르더라도 특정 인물은 떠오르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작품에도 배우에게도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전기영화가 아니에요. 특정 인물을 정해두고 연기한다면 모사하게 될 가능성이 크죠. 어떤 정치인을 욕하자고 만든 게 아니기 때문에 롤모델을 정해두지 않았어요. 누군가를 참조한다면 관객들은 이를 바로 알아차릴 텐데….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 영화의 메시지나 주제의식이 좁아질 수밖에 없죠. 그 사람의 궤적에 갇히게 되니까요.”

최민식은 영화의 메시지를 지키는 동시에 배우로서의 자존심도 지키려 했다고 밝혔다. 특정인의 궤적에 갇히는 것은 “배우로서도 굉장히 재미없는 일”이라면서.

“어쩌면 그게 자존심일 수도 있어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제가 만드는 변종구의 모습을 지켜 가야죠.”

영화 '특별시민'에서 서울시장 변종구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사진=쇼박스 제공]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되 상황은 여기저기에서 꺼내고 엮었다. 특히 정치인과 언론, 미디어의 관계는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현실과 흡사하다. 최민식 역시 인물들의 관계성에 주목했고 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그래서 문소리가 필요했어요. 극 중 정치부 기자 정제이와 변종구의 관계가 치열하기 때문이죠. 에너지 있는 배우가 역할을 맡길 바랐고 같은 이유로 문소리를 밀었어요. 오죽하면 제가 명동극장에 꽃다발을 들고 찾아갔겠어요? 하하하. 당시 (문)소리가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극장까지 찾아가 ‘맛있는 술 사줄 테니 이 영화 같이하자’고 꼬셨어요.”

영화 ‘특별시민’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최민식을 주축으로 곽도원, 심은경, 문소리, 라미란 등 누구 하나도 빠지지 않는 치열함을 가지고 있다. 그 중 변종구와 접전을 벌이는 건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 곽도원은 깊이 있는 연기력과 에너지로 유일하게 변종구를 쥐고 흔드는 선거공작 일인자 심혁수를 소화해냈다.

“(곽)도원이와의 연기는 정말 즐거웠어요. ‘범죄와의 전쟁’ 이후 두 번째 연기 호흡이었는데 탁구 게임을 하는 것처럼 호흡이 잘 맞더라고요. 제가 서브를 넣고, 스매싱해도 그때그때 되돌아와요. 동물적인 감각이 있는 친구예요. ‘이번엔 내가 이런 톤으로 연기할 테니까 너도 그렇게 받아줘’하고 상의하는 게 아닌데도. 어떤 상황이든 탁 주면, 탁 되돌아오는 게 재밌고 즐거웠어요. (곽도원은)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친구예요.”

영화의 또 다른 재미는 사실적인 정계 묘사에 있다. 극 중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선점하기 위해 분투하거나 여·야 정치인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 등은 관객들에게 묘한 기시감을 준다. 최민식은 이 사실감을 영화의 큰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았다.

“이제 곧 대선을 앞두고 있죠. 작년 8월 크랭크업을 하고 4월 개봉을 앞두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촬영할 때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정말 놀라울 따름이에요. 어떤 분은 ‘기가 막힌 타이밍에 개봉했다’고 하시고, 또 어떤 분은 ‘피곤한데 영화까지 정치 얘길 해야겠냐’고 하세요. 저 역시 두 가지 의견에 다 공감을 해요. 심지어 영화보다 현실이 더 세잖아요? 우리도 (내용을) 더 세게 가도 될 뻔했어요.”

영화 '특별시민'에서 서울시장 변종구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사진=쇼박스 제공]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이야기하던 최민식은 다가오는 ‘장미 대선’에 대한 걱정과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 작품을 찍으면서 지도자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제가 생각하는 지도자는 공인으로서 사명감과 인식이 분명한 사람이에요.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해달라고 권한을 드린 건데, 그것이 변질돼서는 안 되잖아요?”

수없이 많은 작품을 찍었고, 많은 캐릭터를 연기해왔다. 하지만 그는 아직 목마르다. 최민식은 인터뷰 내내 더 많은 작품에 도전하고 싶고, 어떤 캐릭터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며 열의를 내비쳤다.

“건방지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너무 (연기가) 고파요. 예전에는 신중하게 역할을 고민했었는데 이제는 이것저것 막 해보고 싶어요. 예컨대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판타지 장르나, ‘미녀와 야수’ 속 야수 같은 캐릭터까지요. 우리나라도 CG(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좋아졌으니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또 항상 목 놓아 기다리는 격정 멜로까지…. 격정이 아니라 걱정인가요? 하하하. 더 나이 먹기 전에 장르·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경험에 대한 욕심이 자꾸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