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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窓] '술탄의 부활'과 터키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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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0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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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완 에디터]

[글로벌 에디터 이수완] 이슬람주의 정치가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지난달 개헌 국민투표에서 가까스로 승리해 ‘제왕적 대통령’ 지위를 얻게 되었다. 투표 결과, 그가 바랐던 압도적 승리도 거두지 못하고 부정 투·개표 의혹에도 휘말리면서 터키 사회의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국민투표를 통해 강력한 통치권을 확보해 정치 안정과 경제 회복을 노리겠다는 의도였지만 일인 독재 체제가 장기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몇년간 군부 쿠데타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는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시급한 개혁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할 전망이다. 올해 1월 세계 3대 신용평가 업체가 모두 터키 국가신용등급을 '정크' 등급으로 강등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개헌으로 인해 정치 불안정성이 지속될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되며 경제 리스크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고있다.

이슬람제국에서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통치자를 술탄이라고 불렀다. 오스만 제국이 사라지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700년 동안 유지됐던 술탄 제도는 터키에서 폐지되었지만 21세기인 지금,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술탄의 부활'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있다. 에르도안(63)은 2003년부터 2014년까지 11년간 의원내각제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인 총리를 맡으면서 연평균 경제성장률 4.5%라는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에르도안은 술탄의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2010년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고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지난달 16일 또 한 번의 국민투표로 에르도안 대통령은 의회 해산권과 법관 임면권 등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쥔 무소불위의 대통령이 됐다. 특히 중임을 할 수 있어 대통령 임기는 10년, 2029년까지 가능해졌다. 중임한 대통령도 국회 동의를 얻으면 또 출마할 수 있어 최장 2034년, 80세까지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술탄 개헌' 국민투표는 찬성 51.4%, 반대 48.6%로 통과됐다. 그러나 찬반 표차가 미미한 데다 야권의 국민투표 무효화 요구도 커지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반대 세력을 향한 '숙청 칼날'을 계속 휘두르고 있다. 투·개표 과정에서 선관위 날인이 찍히지 않은 250만표가 조작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유럽연합(EU) 집행위는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야당이 이번 투표의 무효화와 재투표를 주장하고 반(反)에르도안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선거 결과를 번복시키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지난해 7월 군부 쿠데타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법조인, 교육자, 언론인 등 직종 구분없이 수만명의 반대파를 구금 또는 숙청하며 공포 정치를 강화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19일 정부가 제출한 국가비상사태를 올해 7월까지 3개월 연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국민투표에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종식하고 국민 통합과 화해의 길로 나설 것이라는 희망도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와의 역학관계는 복잡한 형국이 되고 있다.

터키는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1923년 공화국을 수립한 당시부터 지금까지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해 왔다. 인구의 90% 이상이 회교도이지만 정치에는 종교적 개입을 금지시키는 서구지향적 ‘세속주의’가 터키 사회를 지탱해 왔다. 그간 이슬람주의에 맞서 세속주의 정부를 지켜오던 군부가 지난해 에르도안에 맞선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며 터키는 권위주의 이슬람 국가로 급선회하고 있다. 국내 정치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처럼 제왕적 통치로 향하면서 민주주의 퇴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제왕적 대통령제 부활이 터키의 대 유럽 관계 설정을 향한 여정을 더욱 험난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터키는 1987년 유럽연합(EU) 가입을 신청해 2005년부터 가입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정치, 민주주의, 인권 문제 등의 자격 조건을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지지부진한 상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개헌안이 통과된 직후 EU 가입 신청 및 사형제 부활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뜻을 비쳤다. 만약 사형제 부활이 현실화되면 터키는 EU 가입에 대한 희망은 접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터키 영토는 2%가 유럽에 속하고 98%가 아시아에 속해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도 EU와 터키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EU는 터키 전체 수출의 45%를 차지하는 최대 무역 파트너다. 터키는 EU와의 새로운 파트너십 설정을 통해 인적 교류와 경제 통상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반면 EU는 지역안보와 유럽난민 문제 해결을 위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인 터키의 협력이 절실하다. 터키에서 비민주적인 행보가 계속된다면 EU와의 협력 가능성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 일각에서는 에르도안 정권이 유럽에 대한 러브콜을 접고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슬람권에 초점을 두는 대외정책의 변화를 점치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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