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면 주범은 따로 있다. 공식도 금세 보인다. 모든 증권사가 전산비에 후하지는 않았다. 삼성증권은 2016년 한 해에 전산비로 670억원 넘게 지출했다. 10대 증권주 가운데 가장 많았다. 다음은 키움증권이다. 약 440억원을 썼다. 10곳 평균은 한참 적다. 250억원에도 못 미친다. 이마저도 평균보다 두세 배를 쓴 삼성·키움증권이 늘려놓은 거다. 두 회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총수 일가가 정보기술(IT)업체에 직·간접으로 출자하고 있다. 삼성SDS와 다우기술 얘기다.
시총 순서는 꽤 다르다. 일등은 압도적으로 미래에셋대우다. 삼성·키움증권은 셋째와 다섯째에 제각각 머물러 있다. 실적도 마찬가지다. 전산비와 따로 논다. 2016년 결산을 봤다. 가장 많은 돈을 번 곳은 메리츠종금증권이다. 유일하게 영업이익이 3000억원을 넘었다. 반대로 전산비는 꼴찌 수준이다. 80억원 남짓에 그쳤다. 더 적게 쓴 회사는 신영증권 한 곳뿐이다. 메리츠·신영증권도 공통점이 있다. 총수 일가와 IT업체가 무관하다.
삼성SDS는 계열사 덕에 산다. 2016년 매출 가운데 약 74%를 내부거래로 채웠다. 규모가 6조원을 넘었다. 삼성그룹 총수 일가가 가진 지분은 17%쯤 된다. 총수 일가는 이번 봄 배당으로 100억원 가까이 받았다. 키움증권도 삼성그룹보다 내부거래 액수만 적을 뿐 비슷하다. 해마다 키움증권은 200억원 안팎을 배당해왔다. 이 가운데 거의 절반은 약 48% 지분을 가진 다우기술 몫이다.
전산팀장이 뒷돈이라도 챙기는지 궁금할 거다. 더 잘나가는 경쟁사보다 전산비를 두세 배씩 쓰자는데 안 그렇겠나. 선뜻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어줄 사장은 없을 거다. 그런데 IT업체를 계열사로 두기만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규제가 없는 게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감 몰아주기를 감시하고 있다. 이사회 의결 없이 내부거래를 하면 공정거래법 위반이다. 문제는 요식행위일 뿐이라는 거다. 삼성증권이 내놓은 2016년 이사회 안건을 봤다. 내부거래뿐 아니라 어떤 안건에도 반대표를 던진 사외이사는 없었다. 경쟁사 한두 곳만 비교해도 알아차렸을 너무나 헤픈 지출을 모두 눈감아줬다.
대놓고 벌이는 도둑질이다. 제대로 세금 내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일감을 준 증권사가 비용을 늘리면 법인세는 줄어든다. 일거리를 받은 IT업체가 그만큼 법인세를 더 내더라도 상쇄돼 버린다. 결국 총수 일가는 세금 한 푼 안 내고 돈을 불려갈 수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주식 투자자가 받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적자마저 아랑곳없이 일감을 몰아주니 실적과 주가가 거꾸로 간다.
거창해야 재벌개혁이 아니다. 비정상을 바로잡는 거다. 문재인, 안철수를 비롯한 유력 대선주자가 대부분 재벌개혁을 위한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에 적극적이다. 이미 법안도 국회로 넘어가 있다. 논란이 없지는 않다. 소수주주 참여를 늘리는 집중투표나 다중대표소송이 대표적이다.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개정안에 강하게 반대한다. 경영권을 위협해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킨다는 거다. 반면 일감 몰아주기를 막자는 데에는 정치 노선을 가릴 것 없이 뜻이 같다. 대선공약에서 보수·진보가 따로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부당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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