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등용 기자 =“여성이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운명의 개척은 남자가 해야죠.”
남자 주인공 로버트 킨케이드의 이 대사에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주제 의식이 집약돼 있다. 커튼콜 때 눈물로 범벅이 된 배우들의 얼굴을 보면 얼마나 자신의 역할에 몰입해 마음 아파했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얼핏 보면 외간남자와 바람난 한 유부녀의 불륜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여자 주인공 프란체스카 존슨의 인생사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미국이지만 1965년의 미국 사회는 여전히 인종적으로나 성적으로나 차별이 존재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제한적이었고 남녀 관계에서의 역할 역시 수동적이었다. 주인공 프란체스카는 이렇게 억압받던 당시 여성 인권의 표상을 보여주는 표본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가고 싶은 곳을 다니며 마음껏 그림 그리는 삶을 꿈꿨던 프란체스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로 파병 온 리처드 버드 존슨을 만나 결혼해 미국 아이오와로 떠난다. 이후 무료한 일상 속에서 과거 꿈 많던 소녀 시절의 자신을 잊고 살아간다.
로버트와의 만남은 단지 낯선 남자와의 사랑은 아니다. 로버트가 선물한 이탈리아 나폴리의 사진을 보고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고향과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린다. 이를 통해 프란체스카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용기를 낸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가 주체성을 되찾게 하는 인물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프란체스카 역에 배우 옥주현이 캐스팅된 점은 탁월했다. 이미 뮤지컬 ‘스위니토드’에서 발군의 연기력으로 기괴한 러빗 부인 역을 연기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도 큰 무리 없이 유부녀 역을 소화해냈다. 옥주현과 호흡을 맞춘 로버트 역의 배우 박은태도 감미로운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감동을 더했다.
다만, 앙상블(코러스 배우)이 무대 소품을 직접 옮기고 극의 흐름과 관계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쉬웠다. 최대한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지만, 관객의 감정이 이입된 순간에서 나온 무리한 연출은 수정이 필요해 보였다.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러한 지적과 함께 불륜을 아름답게 포장했다는 비판도 받지만 1960년대 꿈을 잃고 강요된 삶을 살아야 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성차별이 심했던 과거 시대를 보낸 중년 여성에게 특히 인기가 많은 것도 어쩌면 이러한 이유에서일지도 모르겠다. 공연은 오는 6월 1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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