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문재인 당선인,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 발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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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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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지난 대선의 패배를 딛고 권토중래에 성공했다. 문 당선인은 40% 정도의 득표율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국민의당 안철수,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큰 차로 이겼다. 문 당선인은 당선 소감에서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원칙을 지키고 국민이 이기는 나라,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나라다운 나라를 꼭 만들겠다. 국민만 보고 바른길로 가겠다"면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다. 문 당선인은 또 "위대한 대한민국, 정의로운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당당한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대선 의미는 각별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장기 국정 공백에 이은 조기 대선이었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 사상 초유의 경험을 공유한 셈이다. 매사 그렇듯 급하면 허점도 있기 마련이다. 이번 대선에서 미래를 향한 국가 아젠다나 굵직한 공약ㆍ정책이 전면에 부상하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들 서둘러 대선에 참여하는 바람에 생긴 불가피한 한계였다. 그나마 두 번째로 대선에 도전한 문 당선인이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각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문 당선인도 눈앞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정권인수위 가동이 불가능한 데다,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곧바로 국정에 돌입해야 하는 절차적 촉박함부터 그렇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 속에서 최적의 길을 찾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처음부터 박 전 대통령의 비정상적 국정운영과 궤도 이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대선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따른 결과이긴 하나 보수 정치의 퇴조가 두드러졌다. 선거 때마다 등장한 지역ㆍ이념 중심의 몰표 현상도 상당히 약화했다. 양자나 3자 구도 대신 다당제로 치러진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적폐 청산을 앞세운 문 당선인은 대선 초반부터 줄곧 선두를 유지했다. 중도를 내건 안 후보가 갈 곳 잃은 보수층을 유인하며 한때 추격의 고삐를 당기기도 했으나 이내 뒤로 밀렸다. 과거 어느 대선보다 후보 합동 TV토론이 당락의 큰 변수가 된 것도 한 원인이었다. 홍 후보의 경우 대선 중ㆍ후반부터 보수 결집론을 내세워 약진했으나 보수 유권자의 호응이 제한적이어서 결국 문 후보의 벽을 넘지 못했다. 뚜렷한 대선 후보를 찾지 못한 보수표심은 한 곳에 정박하지 못한 채 표류했다. 이번 대선에는 보수 정치의 분열과 쇠퇴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문 당선인 앞에는 숱한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흐트러진 국정 수습이 시급하다. 그 전제는 국민통합일 것이다. 탄핵 과정에서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대립과 반목의 골이 깊게 파였고 그 후유증도 만만찮다. 이를 치유하지 않고선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렵다. 문 당선인이 비(非) 영남 총리 영입, 합리적 진보부터 개혁적 보수까지 포괄하는 통합정부 구성을 내건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진보정권 10년과 보수정권 9년여를 거치면서 얻은 교훈은, 울타리를 치고 편을 가르는 진영 정치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문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과반을 끌어안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여부는 포용의 그릇 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안(彼岸)에 이르면 타고 온 배를 버려야 한다"는 불가의 가르침대로, 이미 타고 온 배에 미련을 두거나 집착해선 번뇌만 쌓일 뿐이다. 당장 문 당선인은 국무총리 후보자를 내정해야 한다. 후보 검증의 물리적 시간이 절대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통합정부를 구성하겠다는 공약만 지키면 국회 인사청문회도 난관만은 아닐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가 역주행한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회전문 인사나 '수첩 인사'로는 분열과 반목만 자초할 뿐이다. 문 당선인이 정파를 넘어서 흉금을 터놓고 손을 잡는 소통의 정치를 한다면 국회선진화법도 이겨낼 수 있는 체력 비축이 가능하다. 물론 야당도 대선 과정에서 숱하게 공약한 대로 협치의 정신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당면 현안은 안보다. 북한은 핵ㆍ미사일 개발에 집요하다 매달리고 있고,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는 복잡다단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같은 스트롱맨들과의 협상도 녹록지 않을 것이다. 시중에 전쟁설까지 나돌 만큼 고조된 위기 상황을 돌파해야 하는 게 엄중한 현실이다. 한 치 앞도 혼미한 위기 국면에서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방관자로 전락해 있는 꼴이다. 장기간 콘트롤 타워 부재에 따른 국정 공백의 후유증이 크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만 해도 중국은 보복 수위를 높이면서 우리를 계속 압박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10억 달러짜리 사드 계산서를 내밀고 있다. 외교ㆍ안보 진용 재정비가 시급하다. 아울러 당사자 해결 원칙에 맞게 우리 목소리를 내고 관철하는 치밀한 전략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문 당선인은 주변국 스트롱맨들과 충분히 맞설만한 강인한 리더십으로 무장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주도해 간다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경제ㆍ복지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저출산 고령화로 저성장 구조가 굳어지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번듯한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와 같고, 중ㆍ장년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의 연속이다. 아이 보육비ㆍ교육비 부담으로 출산을 꺼리는 젊은 부부들이 늘어나고, 노후 대책 없는 노인들도 넘쳐난다. 빈부 격차와 가계부채도 위험한 수준이다. 문 당선인이 기초연금 인상과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 어린이집 확충 등을 공약했지만, 정부 재정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단기 대응과는 별도로 경제 패러다임 전환과 리모델링을 더 이상 늦추면 안 된다. 글로벌 각축장이 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전력을 쏟아붓고 이를 뒷받침할 교육 혁신에도 나서야 한다. 경제 재편도 시급하다. 한계에 다다른 재벌 구조 개혁과 함께 스타트업이나 '강소기업(강한 중소기업)' 지원 확대, 부실기업 구조조정 등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도 치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문 당선인은 '재수 인생'을 살아왔다. 대학입시와 사법시험, 대통령 선거 모두 한 번에 되지 못했다. 민주화 운동 경력도 갖고 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한테는 '평생의 동지'였다. 흙수저에서 일어서 밑바닥부터 일궈온 굴곡 많은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변에선 그를 가리켜 진솔하고 따뜻한 심성을 가졌다고 한다. 권력의 본질도 잘 알 터이다. 문 당선인의 대선 캐치프레이즈는 적폐 청산이었다. 하지만 무조건 과거로만 회귀하는 청산은 아닐 것이다. 미래를 향한, 더 나은 대한민국을 향한 청사진이길 기대한다.

(끝)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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