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완 에디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큰 기대 속에 발표된 개편안은 한 페이지 250단어에 불과했다. 구체성이 부족한 모호한 내용들을 서둘러 발표한 배경이 의문으로 남아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야심찬 세제개혁에 대한 의구심을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한 후 워싱턴 정가가 대혼란에 빠지면서 세제개편안 등 경제 입법의 신속한 처리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고 있다.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관료들은 30여년 만에 최대 수준이라는 이번 감세안이 중산층 이하 국민을 위한 것이며 이들의 소득 증가로 미국 경제가 활성화될 것으로 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세제개혁은 중산층을 희생해 부동산 재벌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 자신을 비롯한 부자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셀프 감세'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 20년 미국의 예를 보면 감세가 일시적으로 수요를 진작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반드시 의미 있는 고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시행한 2001년과 2003년의 감세법안은 경제성장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2009년 대규모 감세 조치를 내놓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반면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는 세율을 인상하고도 고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 감세가 반드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또 정부 지출 감소가 없는 감세는 반드시 재정의 악화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트럼프의 세제개편안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정책과 유사한 것으로 평가된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0년 대선 때 대규모 감세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그는 세율을 낮추어야 조세수입이 증가한다는 경제학자 아서 레퍼 이론의 신봉자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기간 평균소득세율을 대폭 내렸다. 1970년대 14~70%에 달하던 소득세율이 10~28%로 내려갔다. 그 여파로 미국은 1990년대 중반까지 대규모 재정적자에 시달렸다.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은 세율을 인상해 재정흑자로 돌려놓았다. 그러나 2001년 공화당 부시 행정부의 감세로 다시 적자로 반전됐다.
트럼프도 레퍼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감세를 하면 투자가 활성화되고 해외 이전 기업이 줄어들면서 일자리가 늘고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레이거노믹스'를 이끌던 레퍼 교수가 주장한 것은 합리적인 세율을 강조한 것이지 세율을 무작정 낮추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레이건 행정부 초기 70%에 달하던 최고 소득세율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손댈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의 감세는 부작용만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6일 발표된 트럼프의 세제개혁안은 레이건 전 대통령 당시보다 급진적이며 파격적이지만 반대 목소리가 높아 의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기업들이 납부하는 연방 법인세율이 현행 35%에서 15%로 대폭 인하되고 개인 소득세 구간도 현행 7단계에서 3단계로 단순화해 최고 세율을 39.6%에서 35%로 낮추는 게 골자다. 실제로 한번에 법인세를 20%포인트나 인하한 전례는 없다. 1986년 레이건 전 대통령의 법인세 인하폭은 12%포인트였다.
트럼프는 부동산세와 대체 최저세(AMT: Alternative Minimum Tax) 폐지 방침도 밝혔는데, 이는 최상위층의 소득을 급등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대체 최저세는 부유층이 각종 공제 항목을 활용해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납부 세액이 최저세를 밑돌 경우 추가로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내부 유출 문건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도 AMT 때문에 2005년 3650만 달러의 세금을 납부했다. 이것이 없었다면 단 550만 달러만 내면 되었을 것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고소득 자영업자를 포함해 헤지펀드, 법률회사, 부동산 개발업체 등 이른바 '패스 스루(pass-through) 기업'에 적용되는 소득세 최고 세율도 종전 39.6%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운영해온 부동산 개발업체가 이런 사업체여서 트럼프가 '셀프 감세'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개편안으로 성장률이 현재 2%대에서 3%대로 상승해 향후 세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수입 매출에 대해서만 법인세를 부과하고 수출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면세하는 내용인 '국경조정세'가 미국 내 내수업체 반발로 이번 개편안에 포함되지 못해 감세에 따른 세수 확충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트럼프가 어떤 마술을 부려 재정투자와 감세라고 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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