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 4월 1일 ‘천년의 대계이자 국가의 대사’라며 갑작스레 슝안신구(雄安新區) 계획을 발표했다. 베이징에서 수도 역할에 불필요한 것들을 이전하려는 목적이다. 슝안신구는 일대일로와 함께 시진핑 시대를 상징하는 초거대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슝안신구가 들어설 곳은 허베이성 바오딩시의 농촌이다. 이곳은 대다수 중국인에게도 익숙하지 않다. 베이징과 톈진에게 바오딩은 못사는 옆동네일 뿐이다. 바오딩의 1인당 GDP 수준은 허베이 도시들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거기에 도심도 아닌 농촌 지역이니 속된 말로 ‘깡촌’이다.
바오딩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청나라 시기에는 베이징이 직접 다스리던 거대한 직례(直隸)의 행정수도였다. 비유하자면, 서울·인천·경기도를 합한 지역의 도청 소재지였다고 할 수 있다. 행정권력으로는 북방에서 베이징 다음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베이징을 방어하는 주력군을 모아둔 주둔지였다. 의정부와 동두천처럼 수도권을 방어하는 군사도시 역할도 했던 셈이다.
넘버3는 되었던 바오딩의 과거는 거친 입말에 아직 남아 있다. "베이징 뺀질이 열 놈이 톈진 구라쟁이 한 놈을 못 당하고, 톈진 구라쟁이 열 놈이 바오딩 왈패 한 놈을 못 당한다." 권력을 가졌거나 이에 빌붙어 사는 베이징인은 '수도의 뺀질이(京油子)'로 불렸다. 톈진인의 대표 이미지는 장사치였다. 베이징의 높으신 양반들을 고객으로 응대하다 보니 '항구의 구라쟁이(衛嘴子)'가 되었다. 반면 바오딩은 몸과 폭력으로 기억된다. 문화대혁명 시기에도 가장 폭력이 심한 지역 중 하나였다. 이는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다. 권력을 가진 베이징과 돈 많은 톈진 대신 백도, 돈도 없는 바오딩 사람들은 몸을 써야 했다. 더구나 군대가 자주 주둔해 싸우는 기술을 익힐 기회가 많았을 법하다. 실제 바오딩이 권력과 돈은 안 돼도 무술계에서는 위상이 높았다고 한다.
왜 하필 몸과 폭력으로 기억되는 깡촌에 '천년의 대계'를 건설하려는 것일까? 뺀질이들, 아니 베이징의 학자들과 언론들은 바오딩의 농촌이 백지처럼 낙후된 곳이어서 새로 계획을 짜기에 좋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기분은 나쁠지 몰라도 어찌됐든 희소식이 아닌가. 서울 옆의 분당, 일산처럼 큰돈을 쥐어보게 되리라. 그러나 발표 다음날 투기를 막기 위해 부동산 거래가 중지되었다. 거래 중단에도 황량한 시골길이 베이징 뺀질이들과 톈진 구라쟁이들의 고급 승용차로 정체를 겪었다고 한다. 건물주들은 땅값이 오를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한편에서는 그만큼 오를 임대료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미 베이징에서 옮겨왔던 비효율적이고 더러운 공장들은 슝안신구라는 위대한 이름에 부응하기 위해 더 바깥으로 물러나야 한다. 이로 인해 실업자가 늘지, 아니면 새로 옮길 첨단산업 덕분에 취업이 쉬워질지는 불분명하다. 첨단산업의 이주가 대기오염이 심한 북방에서도 공기 더럽기로 수위를 달리던 바오딩을 정화할지, 아니면 주변으로 밀린 옛 공장들과 함께 더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지도 지켜봐야 한다.
중국의 거침없는 추진력으로 볼 때, 바오딩은 깡촌에서 신세계가 될 것이다. 이 신세계가 환희를 불러올 수도 있지만, 바오딩인의 거친 습성을 일깨워 분노와 저항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건 남의 나라 속사정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몇 년 뒤에 환발해 건너로 베이징, 톈진, 슝안신구를 잇는 거대한 강철의 삼각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추가로 첨단화된 미세먼지까지 더 마셔야 할 수도 있다.
필자 : 인천대학교 인천대 중국학술원 조형진 교수 hjcho@i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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