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미국은 최소한 1987년 6월 항쟁 이전까지 한국의 군사독재정권 수립ㆍ유지를 도우며 한국의 민주화를 가로 막아 왔다.
더구나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은 미국이 전두환 신군부의 학살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미국은 전두환 신군부의 학살에 협력했다. 이로 인해 반미감정이 악화돼 1980년대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독재민주화 운동과 반미 운동이 동시에 거세게 일어났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공수부대가 광주에서 퇴각한 직후인 1980년 5월 22일 당시 존 위컴 주한유엔군 및 한미연합군 사령관은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5.18 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한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했다.
즉 전두환 신군부 세력의 5.18 민주화운동 학살 진압에 협력하는 것이 당시 미국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었던 것.
더구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당시 미국 고위 인사들의 상식 이하의 막말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한ㆍ미 관계의 최대 흑역사로 여겨진다.
전두환 신군부의 5.18 민주화운동 학살 진압이 이뤄진 직후인 1980년 8월 존 위컴은 LA타임즈와의 회견에서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한국의 안보가 유지된다면 이를 한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 전 장군을 지지할 것”이라며 “한국민은 들쥐와 같은 민족이어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복종할 것이며 한국민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치 않다”고 말했다.
또한 존 위컴은 8월 27일 AP통신과의 회견에서 “한국의 10월 사태(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이후 미국의 대한 정책에서 가장 성공한 일 중의 하나는 전두환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으며 우리의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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