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행정부·입법부 한꺼번에 '맞짱'…자리 걸고 사상 첫 의회 압수수색 강행
코미도 2004년 부시의 연장 승인 거부…뮬러, 백악관의 법무부 압박때 코미 도와
(워싱턴=연합뉴스) 이승우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운명을 손에 쥔 '러시아 스캔들 특별검사'에 임명된 로버트 뮬러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FBI 내에서 신화적 존재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창업주'격인 존 에드거 후버 초대 국장 다음으로 긴 12년을 재임했고, 수사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이든 의회든 어떤 권력과도 타협을 거부함으로써 FBI의 권위를 바로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가장 권력이 강력할 시기인 임기 초반의 대통령과 직결된 혐의를 수사하는 데 최고 적임자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러한 그의 강직한 성품과 포기를 모르는 집념을 보여주는 대표적 일화는 재임 중 수사 문제를 놓고 두 차례나 사의까지 밝히며 대통령과 충돌했던 사례들이다.
그리고 결과는 모두 대통령이 아닌 뮬러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뮬러의 '벼랑 끝 전략'은 두 차례 모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 이뤄졌다.
지난 2004년 부시 전 대통령은 국가안보국(NSA)이 영장 없이 도청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연장 승인을 추진하려 했지만, 뮬러는 이를 위헌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이 계속 밀어붙인다면 FBI 국장직을 사임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명분 싸움에서 밀린 부시 전 대통령은 뮬러의 뜻을 받아들여 자신의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2006년엔 부시 행정부는 물론 의회와도 동시에 충돌했다. 하나도 벅찬데 2개의 거대한 권력과 사실상 혼자 맞선 것이다.
FBI는 당시 민주당 소속 윌리엄 제퍼슨 의원(루이지애나)이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포착하고 전방위 수사에 착수했지만,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함에 따라 혐의 입증이 쉽지 않았다.
그러자 뮬러는 미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의회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기로 결단을 내렸고, 이에 의회는 "삼권분립을 위반하는 처사"라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초당적으로' 반발했다.
이미 2년 전 한 차례 망신을 당한 부시 전 대통령은 공개 발언을 자제했지만, 백악관이 대신 나서서 압수수색 물품을 제퍼슨 당시 의원에게 돌려주라고 공식으로 명령했다.
그러나 뮬러는 흔들리지 않고 다시 한 번 '사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의회는 전문가들을 불러 청문회까지 열며 뮬러의 사임 여론을 조성하려 했고, 백악관도 뮬러를 회유했지만, 결국 두 번째 대결에서도 최종 승자는 뮬러였다.
뮬러가 이끄는 FBI 수사팀이 위기 속에서 뚝심 있게 수사를 펼친 끝에 제퍼슨 당시 의원의 루이지애나 자택 등에서 증거를 찾아낸 것이다.
제퍼슨 의원은 당시 13년형을 선고받고 현재도 복역 중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뮬러 전 국장과 부시 전 대통령의 2004년 첫 충돌 당시 중요한 등장인물로 부각됐던 인사가 바로 코미 전 국장이라는 사실이다. 대립의 발단을 제공한 '주연급 조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 존 애시크로프트 법무부 장관의 와병으로 장관 대행을 맡고 있던 코미 당시 법무부 부장관은 부시 전 대통령이 영장 없는 도청 프로그램을 연장하라고 요구하자 연장 승인안에 서명을 거부했다.
그러자 부시 전 대통령은 당시 심복이던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과 앨버토 곤살레스 법률보좌관을 입원 중이던 애시크로프트 장관에게 보내 법무부 승인을 압박했다.
애시크로포트 장관은 당시 이른바 '심신미약' 상태였으나 코미 대행이 병실을 지키면서 부시 참모들의 압력을 막았고, 뮬러 당시 FBI 국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코미를 병실 밖으로 쫓아내지 못하도록 하라"고 요원들에게 지시해 코미를 도왔다.
코미 전 국장은 2007년 상원 법사위 청문회에서 당시를 회상하면서 "뮬러는 내가 만난 최고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처럼 각별한 인연을 지닌 두 사람은 코미 전 국장이 뮬러 전 국장으로부터 FBI 수장 자리를 이어받는 것으로 인연의 끈을 이어왔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부시를 상대로 공동 전선을 펴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던 두 사람이 트럼프라는 새로운 유형의 대통령을 맞아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leslie@yna.co.kr
(끝)
[연합뉴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