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시민들이 자유와 권리를 외치다 처참히 죽었습니다. 37년 후 2017년 5월 18일 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이유를 북한으로 돌리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1980년 5월 18일에 있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은 <계엄철폐>,<유신세력척결>을 주장하며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시민들의 바람을 실현하고자 했던 운동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외치는 동안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자유와 권리를 외치던 분들이 한명 두명 죽어 나갔고 아픈 역사로 남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5·18을 왜곡시키는 주장들이 점점 퍼져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2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시민이 발포를 먼저 해서 진압군이 방어 차원에서 발포했다는 것입니다. 2007년에 국방부 과거사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수여단의 시위대를 향한 발포로 인해 시민들이 무장했다고 합니다. 전두환 대통령도 시위대의 무장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했지만 1997년 2007년 두 차례를 거쳐서 이미 거짓임이 증명되고 해결되었던 일임에도 다시금 퍼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북한군의 투입입니다.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북한군이 투입돼 이를 막고자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것입니다. AK 북한 소총이 다량으로 발견됐고 당시 장갑차를 몰 수 있는 인민군의 사진이 남아있는 것을 보아 인민군을 진압하고자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주장이 떠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소총은 매우 특이한 소리가 나기 때문에 사용했더라면 바로 알 수 있었겠지만, 그에 관한 자료는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또한, KM 900이라는 장갑차를 모는 사진이 있긴 하지만 KM 900은 대형차량을 운전하는 것과 아주 흡사한 형태이기 때문에 쉽게 운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심지어 특정인을 지목해서 얼굴이 비슷하다는 거짓 핑계를 대고 인민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계엄령의 핑계를 북한으로 돌릴 뿐만 아니라 멀쩡한 시민을 인민군으로 돌리기까지 합니다. 또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 찬양곡이다, 5·18 민주화 운동 참가자의 유가족들은 공무원 시험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퍼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북한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된 곡이고, 공무원 시험에 대한 혜택은 받기가 까다롭고 사실상 유가족들은 1% 정도밖에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이 떠도는 건 신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인데요, 5.18 기념재단이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인 13.3%, 청소년 12.0%가 '5.18은 불순세력이 주도한 폭력사태'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특히 성인 11.9%, 청소년 8.4%는 '북한과 연결되어 있다'라고 동의했습니다. 37년이 지난 지금, 거짓 사실을 날조하고 퍼뜨릴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우리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받쳐 외치셨던 분들에게 묵념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터무니없는 사실들이 우리들의 입에 올라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김형주 기자(아주경제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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