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 50년 이상 살아오면서 여럿 대통령의 통치를 겪었다.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제외하면 모든 대통령의 통치, 이 단어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시기 동안 뉴스를 통해 대통령의 동정을 듣게 됐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일거수 일투족이 뉴스가 되고, 화제가 되는 시기인 군부독재 시절은 물론이고 민주화 투쟁으로 이끌어낸 '87체제 이후에도 대통령의 동정은 늘 뉴스에서 차고 넘쳤다.
대통령은 말 뿐만 아니라 행사 참석이나 관심 자체가 국정의 방향타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시됐던 권위주의 시대였기 때문이었다.
내수시장 활성화를 장려한답시고 대통령이 휴가를 가는 것이 큰 뉴스가 되는 시대를 살아왔다.
국민의 시대가 강요했던 그러한 권위는 아직도 부지불식간에 몸 구석구석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강요에 굴복해야 착한 사람일 것 같은 비굴함이 나도 모르게 체화돼 있음을 실토한다.
50이 조금 넘어도 이럴진대 그 이상의 연령층은 대통령이 나라님이 된다 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이러한 비뚤어지고 잘못된 인식 역시 지배층의 논리에 세뇌당한 탓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순종과 굴복의 주체가 자신이기에 그 변명은 허망하다.
지금 힘든 시기를 겪는 청년층에 대해 한가지 부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태도다. 기득원층을 향해 거침없이 대들지만, 논리와 합리성으로 무장된 그들의 의식구조는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겨울, 촛불집회의 시민자유발언대에 가장 많이 오른 것은 중·고생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적폐의 최대 피해자였다며, 자기들이 살아갈 세상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순간, 촛불혁명의 승리와 완성을 믿게 되었다.
긴 서론을 꺼낸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연차휴가를 냈다는 짤막한 소식 때문이다.
그 소식은 대통령의 휴가는 여름휴가만 있는 줄 알았던 환상, 어쩌면 그 환상이 적폐를 용인했을 수도 있지만, 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매일 관저에 틀어박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아 세월호 참사 당일의 7시간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하는 전임자와 비교한다는 것은 우리가 참아냈던 비극의 시간을 더 참담하게 할 뿐이다.
대통령도 개인적인 일이 있으면 일반 직장인처럼 연차휴가를 내는 시대는 정상적인 사회다.
대통령이 시민의 자리로 내려와 시민과 함께 소통하는 시대가 당연하면서도, 아침 출근시간에 신문에서 그 소식을 접하니 새삼스레 반갑고 신선하게 다가들었다.
대통령이 연차휴가를 내든, 여름휴가를 가던 국정에 지장이 없는 한 더 이상 뉴스가 되지 않는 시대는 더 좋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가 만들었고, 또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아이들은 더 좋은 세상에서 살 것이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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