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마저도 영화 속 리처드 기어에 대해 환상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그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을 들여다보면 기분이 찜찜해진다. 그의 직업은 인수·합병(M&A) 전문가다. 자칫 이 직업에 대한 환상도 가질 수 있겠다. 하지만 그가 부를 쌓는 수단은 적대적 M&A다. 좋게 말하면 M&A 전문가, 다른 말로는 기업사냥꾼이다.
기업사냥꾼은 자신이 매입한 주식을 배경으로 회사경영에 압력을 가해 기존 경영진을 교란시킨다. 그리고 매입 주식을 비싼 값에 되파는 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다. 영화 속 리처드 기어도 M&A에 성공해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해당 기업의 경영은 악화되고 직원들은 직장을 잃는다.
위기에 빠진 회사를 M&A를 통해 살리는 것도 자본시장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기업사냥꾼들이 오직 자신의 부를 위해 회사 살리기는 뒷전인 채 회사를 사고 파는 데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건실했던 기업을 되레 부실하게 만들었다면 문제가 더 크다.
결국 시민단체와 노동계가 횡령·배임을 저지른 자는 대주주 자격을 가질 수 없도록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16일 썬코어 노동조합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 모였다. 한국노총, 전국금속노조연맹 등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최규선의 경영권을 박탈하고 썬코어의 경영에 절대 관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아이에너지와 현대피앤씨의 회삿돈 430억여원을 횡령하고 배임을 저지른 혐으로 기소됐다. 결국 지난해 11월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상태다. 구속집행정지 기간에 도주했다가 붙잡혀 범인도피교사 혐의도 추가됐다. 노조는 "앞으로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횡령·배임을 저지르면 대주주가 될 수 없도록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며 "같은 혐의로 처벌을 받으면 일부 지분을 강제매각하도록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김 전 대통령의 3남 홍걸씨를 매개로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기업으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긴 '최규선 게이트'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썬코어는 대출원리금 연체사실 발생 지연공시로 인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고, 지난 2월 13일부터 주권매매가 거래정지된 상태다. 지금도 부당한 이득을 누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기업사냥꾼들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기업 경영을 망치고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모는 기업사냥꾼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 자본시장이 기업사냥꾼들의 놀이터가 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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