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1
4차 산업 혁명은 혁명인가 일시적 유행인가
김 홍열 (초빙논설위원· 정보사회학 박사)
혁명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Better life than now)을 위해 4차 산업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더 좋은 세상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누구에게 더 좋은 세상인가 하는 것이다. 공식적인 답은 ‘우리 모두’가 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좋은 세상에 대한 현실감 있는 정보도 없고 기대고 싶은 환상도 없다. 바둑의 신으로 등극한 인공지능이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고 유인 드론과 자율 자동차로 몸과 맘이 편해지는 세상이 온다고 주장하지만, 그 세상이 나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다. 개인이 원하는 좋은 세상은 걱정 없고 고민 없는 삶이다. 좀 더 풀어쓴다면 일할 곳이 있고 노동의 대가로 자신이 원하는 기본 생활이 충족되는 사회다. 그 사회가 농경사회인지, 산업사회인지, 정보사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사회적 리더들과 일반 대중들 사이의 괴리감은 생각보다 크다. 그리고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주체가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미래를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 공동체에 속해 있는 대다수 사람들의 현재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들의 욕구를 알아야 한다. 그 후에 그들을 주체로 내세우는 프로그램을 발표해야 한다. 프로그램이 맘에 들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 떠돌고 있는 대부분의 4차 산업혁명 담론들은 4차 산업혁명의 주체를 사람이 아니라 기술로 전제하고 출발한다. “3D 프린팅, AI, 자율 자동차, 스마트 그리드 등이 더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으니 우리 모두 준비해야 된다. 미리 준비 못하면 낙오된다.“ 이건 혁명의 메시지가 아니라 기술 결정론자들의 무지한 협박에 가깝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담론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필요성에 의해 시작되었다. 긍정적 여론을 확신시켜 국가나 공공기관이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기업과 기업 친화적 연구소에 의한 이런 작업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여년 전 인터넷 상용 서비스가 본격화되었을 때 금방이라도 새 세상이 올 것처럼 떠들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힘들다. 아니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빈부격차는 더 커지고 있고 해결될 가능성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신기술에 의해 발생한 초과 이윤을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 암울한 것은 이런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제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4차 산업혁명은 혁명인가 일시적 유행인가 ? 혁명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일시적 유행이라고 하기에는 그 의미가 너무 크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네트워크 기반의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많은 것들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새롭다는 것은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총이 독재자를 향하면 혁명이 시작되고, 총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되면 독재가 시작된다. 기술은 좋은 수단으로 활용될 때 그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미래이지 기술이 아니다. 기술은 우리 모두를 위해 활용되어야 한다. 어느 순간에도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삶을 피폐시켜서는 안 된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부의 집중이 가속화되고, 정보가 독점되고,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기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술은 일자리를 늘리고 소득격차를 줄이고 공평한 사회를 위해, 사회적 약자들의 정상적 생활을 위해 도입되고 활용되어야 한다. 모든 기술들은 좋은 방향으로 활용될 가능성들이 많다.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무책임하게 4차 산업혁명을 칭송하지 말고 기술의 사회적 효용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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