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쩐의 전쟁’의 막이 올랐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예산 전쟁이다.
새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능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위원장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하 국정기획위)가 30일 산하에 지방공약 검토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하는 등 총 5개의 TF를 꾸리면서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 재원 마련 검토에 착수했다.
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대선공약 총 재원은 178조원(연간 35조6000억원)이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곳곳에서 이상 증후군이 속속 포착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딜레마는 크게 △국정기획위의 아마추어리즘과 각 부처의 할거주의 △장밋빛 재원조달 △정공법 없는 증세 논의 등 크게 세 가지다.
컨트롤타워 부재 속에서 엇박자만 내다가 예산 전쟁이 국회로 넘어온다면, 살얼음판 정국의 연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구속력 없는 국정기획위··· 파워 점차 비대화
가장 큰 딜레마는 국정기획위의 권한 한계와 역할 범위의 불일치다. 애초 국정기획위는 3S(Short·Slim·Secret)를 표방했다.
말 그대로 ‘짧은 기간’(최장 70일)에 ‘작은 조직’이 당·정·청에 누가 되지 않도록 ‘비밀리’에 임무를 완수한다는 것이다. 국정기획위 출범 당시 정치권 안팎에선 ‘정부조직개편과 정책 올인’ 기구라는 말과 함께 자문기구의 한계론이 팽팽히 맞섰다.
앞서 정부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보면, 국정기획위 역할은 △정부조직·기능 △예산현황 파악 △정부 정책기조 설정 등 국정운영 목표 및 과제 수립에 한정했다. ‘국정기획위의 정치화’에 선을 그은 셈이다.
문제는 힘의 균형추 쏠림화다. 집권당 현역 의원 다수가 포진한 결과, 국정기획위 한마디에 정부의 정책은 물론 전체적인 방향이 좌지우지된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등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인 ‘5대 비리 배제’ 덫에 걸린 직후 국정기획위가 새 인사 기준 마련 착수에 나선 게 대표적이다.
국정기획위의 군기 잡기 논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김진표 위원장은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와 각 부처 관료들에게 각각 “개혁에는 고통이 따른다”, “새 정부 국정철학을 못 느낀다”라고 군기 잡기에 나섰다.
◆현역 중심인데 증세 ‘글쎄’··· “국정기획위 논쟁 주체 아냐”
일각에선 법적 구속력 없는 국정기획위가 ‘완장 찬 점령군 행세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 국정 전반의 얼개를 그린 뒤 각 정부 부처와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국정기획위가 ‘톱다운 방식’의 명령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정연정 배재대 공공행정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구속력 없는 국정기획위에는 의사결정권이 없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그림을 먼저 그리고 각 부처 관료들에게 보고받은 안을 조정해야지, 사안에 대해 논쟁할 필요가 없다”며 “일의 선후도 잘못된 것은 기구 성격의 모호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기획위 대변인인 박광온 민주당 의원은 같은 날 군기 잡기 논란에 대해 “국정기획위는 대립적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비판을 일축했다.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는 각 부처의 충성경쟁으로 이어졌다. 교육부는 지난 25일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의 전액 국고 부담을 보고했다.
국정기획위는 기획재정부와 조율 없이 이를 발표, 정책 혼선의 빌미를 제공했다. 장밋빛 재원조달 문제도 이 지점에서 불거진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증세 없는 복지’를 언급한 바 있다.
민주당 대선 공약집에 따르면 재원 조달 로드맵은 연간 기준으로 재정개혁 22조4000억원, 소득세 및 법인세 강화 등 세법개정 및 세외수입 확대 13조2000억원 등이다.
하지만 공약의 우선순위에 따라 재원의 조정은 불가피하다. 국정기획위가 재정계획수립 TF 구성을 통해 재원 검토에 돌입했지만, 현역 의원들이 주축인 만큼 ‘세출 구조조정→세원 확대→비과세 감면 축소→증세 수순’을 밟을지는 미지수다.
고소득자 위주의 증세 등에 그친다면 갈등만 양산할 수밖에 없다. 증세 정공법의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리더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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