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용
바이오코아 대표·한양대 교수(분자생명과학)
모든 국가의 보건의료정책은 국민의 건강수준 향상을 통해 국민 삶의 질적인 제고에 목표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단순수명의 연장이 아닌 건강수명의 연장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건강수명은 남녀를 평균해서 73세 정도이고, 그 다음 8년 정도를 질병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 결국 인생의 약 10%를 질병과 함께 보내는 질병수명 기간을 갖게 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국인들이 바라는 건강수명은 약 80세이고, 질병수명은 약 2년으로 나타났다. 건강한 노후를 바라는 마음과 현실은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건강수명을 1년 연장하는 데 평균 2500만원 정도를 쓸 용의가 있다고 조사되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질병수명 기간에는 그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고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이 받아야 될 정신적인 고통은 휠씬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류역사상 가장 방대하고 혁신적인 의료정보 헬스케어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다. 2030년 정도면 최소한 전 세계적으로 300만명 이상의 정밀의료 정보들이 집약된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이 이루어질 것이고, 새로운 개인 맞춤형 의료 시스템으로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100만원이하로 떨어진 개인 유전체 정보분석 비용, 일반화된 병원의 전자의무기록,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대중화에 따른 환경정보 습득 등이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빅데이터를 해석하고 분류할 수 있는 IBM의 왓슨 같은 인공지능(AI)의 발달은 향후 미래의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
21세기는 질병예방과 일상관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건강수명의 시대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병원은 질병이 생기면 찾아가서 치료받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 병원을 찾아야 할 질병수명의 시간은 인생의 10%도 안 된다. 나머지 90%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건강수명의 시간은 늘어나고 질병수명의 시간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정밀의료 정보도 개인에게 적합한 진단과 치료방법을 찾아주는 데 중요하게 사용되겠지만, 무엇보다 나머지 90%의 시간을 적절히 관리하여 건강수명시간을 늘리는 데 더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의 기본 청사진은 유전정보에 담겨져 있다. 유전정보는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고 민족마다 고유의 패턴을 나타내어 질병 발생빈도가 다르게 나타난다. 이 유전체 청사진들을 비교검토하여 질병의 새로운 진단과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고, 또한 개인의 질환 감수성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나라 사람들의 유전정보 확보는 가장 기본적인 미래 의료정보의 원천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이 대체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고,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수십년간의 국민건강검진기록과 보건의료 빅데이터가 쌓여 있다.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폰 보급률을 가진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다. 또한 건강수명 연장 산업에 종사할 수 있는 생명과학 관련 졸업생이 대학에서 매년 9200명 배출되고 있다.
정밀의료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재료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하지만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이들 재료가 잘 정리되기 위해서는 데이터의 표준화, 개인정보의 보호, 과감한 바이오산업 육성책 그리고 정부의 일관된 정책지원 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의료의 개념이 단순히 진단과 치료가 아닌 예방과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바뀐 21세기에는 정부가 앞장서서 개인 정보보호를 기반으로 과감한 정보의 공개와 공유를 통해 새로운 헬스케어 산업이 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의료·ICT·AI 산업 간의 융합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이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20세기 질병 치료의 시대에서는 선진국들의 뒤만 쫓는 입장이었다면, 21세기 건강수명의 시대에는 과감히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고 앞서 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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