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지난 2013년 12월, 인천의 한 제빵 프랜차이즈 매장이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물건값을 지불할 수 있는 가게가 국내에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다. 매장 입구에는 '비트코인 사용처'라는 표지판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의 결제는 매장 안에 설치된 태블릿 PC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진행된다. 물건값을 비트코인 환산 시스템에 입력한 뒤 태블릿 PC에 나오는 QR 코드를 스캔하면 코인베이스를 통해 온라인 가상계좌에 연결된다. 해당 매장 대표 계좌로 이체하면 결제는 10초 만에 이뤄진다.
3년 6개월이 지난 현재 비트코인으로 결제가 가능한 매장은 서울에만 35곳으로 늘었다. 전국적으로는 60여곳에 달한다.
그러나 인천의 제과점을 포함한 대부분의 매장에서 비트코인 결제가 힘든 것으로 확인됐다. 비트코인을 사용해 결제하는 고객들의 수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시스템 오류로 인한 문제점이 계속 발견됐기 때문이다. 해킹에 대한 우려도 매장 주인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로 작용했다.
은행권은 작년부터 블록체인 기술을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걸음마 수준에 그치고 있다.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등 주요 은행은 블록체인 전담팀을 구성하고, 해외 송금 사업모델 개발을 논의하는 단계다. 비트코인을 통화로 인정하진 않지만, 비트코인 송금에 대해서는 외국환거래법을 적용한 데 따른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가 아닌 핀테크 업체가 해외송금을 중개하는 것을 불법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14년 3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비트코인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기도 했다. 비트코인 거래가 가능한 ATM은 지하철역, 편의점 등에 약 7000대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제도적 기반이 미미하고 보안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를 이용하는 고객은 극소수에 불과한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제도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지만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나고 있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경제 관련 부처는 지난해 11월 가상통화 제도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비트코인의 본질과 법적 근거, 제도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제도적 기반이 없어 규제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는 만큼 건전한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제도화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재 금융위와 금감원 간 견제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신주의 경향이 강한 시중은행도 핀테크 업체와 쉽게 협력하지 않고 보수적인 입장만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북미나 유럽 등과의 가상화폐 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과 별개로 소비자들의 관심도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국내 비트코인 거래소 중 거래규모가 큰 상위 3개사의 거래량은 약 1조5064억원에 달한다.
국내 비트코인 시장은 총 거래액 약 1조5000억원, 총 거래량 약 200만BTC 규모다. 지난 6일 기준 국내 비트코인 1일 거래량은 3만1444BTC(이하 빗썸 기준)로, 전달(7145BTC) 대비 340%, 연초(3459BTC) 대비 809%나 급증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은 긍정적이지만, 당국과 은행이 제 잇속만 생각해 실제 상용화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가상화폐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적극적인 만큼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도 제도화가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