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황석영 [사진=연합뉴스]
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엄처시하'(엄한 아내를 모시고 사는 남편)의 감옥에서 나는 늘 사회적·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작가는 무엇에서도 해방될 수 없었다. 나는 말년까지 속박 속에 살다 죽을 것 같다."
소설가 황석영(74)은 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수인(囚人)'(문학동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수인'은 유년 시절부터 베트남전, 광주민중항쟁, 방북과 망명, 귀국 후 수감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낸 그의 생애를 정리한 자전(自傳)이다. 그가 지난해 말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가졌던 소회도 에필로그로 덧붙였다.
그는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역사의 정체가 조금 더 갈 줄 알았다. 나는 우리 국민들, 이 사람들을 별로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여기서 살기 싫었다. 너무 답답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때려치고 싶었다. 그런데 다 늦게, 이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어냈다. 돌이켜보면 이곳의 사람들은 항상 그런 사람들이었다. 한번도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다. 끝까지 차오른다 싶으면 사회정치적, 역사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곡절 많은 생을 살아온 그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그는 "나를 여기까지 끌고온 것이 문학"이라며 "나는 문학주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해왔는데, 지금 돌아보면 문학이라는 신념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냈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베트남전에서도 '살려달라. 여기서 죽지 않으면 평생 좋은 글을 쓰겠다'고 기도했고, 감옥에서 20일간 단식을 할 때도 '반드시 살아남아 이걸 글로 쓰겠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는 "캄캄한 밤에도 저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처럼 문학은 나를 끌고 왔다. 문학은 나의 인생이었고, 나의 집이었다. 집을 떠나 있을 때에도 언제나 잊은 적이 없었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황 작가는 자서전을 쓰는 게 어리석다고 생각해 계속 피했지만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겪어온 세월을 작가로서 공유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자서전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2004년부터 약 1년간 일간지에 연재했던 원고지 4000장 분량의 글과 최근 3년간 쓴 2000장 분량의 원고로 초고를 만들었고, 부인 김길화씨가 여기서 2000여 장을 덜어내 총 4000여 장의 최종본을 완성했다.
그는 이번 책에 석방 후 약 20년간의 기록을 담지 않은 것에 대해 "자전이 끝난 후의 20년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게 될 10여년의 세월은 내 몫이 아니고 내 이웃이나 후배나 다른 사람의 몫"이라며 "누군가 평전으로 나를 기억해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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