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칼럼, 긴급 진단-릴레이시론 (1) 문 대통령, ‘달빛정책’에 시동 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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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2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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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외교안보 긴급 진단, 릴레이시론 (1)

이재호 초빙논설위원(동신대교수·정치학)

[사진=이재호]



문 대통령, ‘달빛정책’에 시동 걸었나


문정인 대통령특보의 발언으로 이 정권의 대북정책인 달빛정책의 윤곽이 드러났다. 핵심은 ‘대화를 통한 포용’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멈추기만 해도 당장 대화를 하고, 미국 전략자산의 전개와 한·미 연합훈련도 축소하겠다는 대목에선 한 발 더 나간 느낌마저 준다. ‘햇볕정책 시즌 2’라는 말도 있다.
문 대통령도 20일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말한 적이 없다”고 했지만 대화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감추지 않았다.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올해 안에 북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를 희망했다. 김정은도 대화를 원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달빛정책을 영어로 옮기면 ‘Moonshine Policy’가 된다. 문 대통령의 성(姓)이 ‘문(Moon)'이어서 여기에다 ‘빛(shine)’만 붙인 꼴인데, 결과적으로 ‘달빛정책’도 되고 ‘문재인의 정책’도 되니 일석이조다. 햇볕정책인 ‘Sunshine Policy’를 포함해 진보세력의 조어(造語)능력이 새삼 놀랍다. 햇볕이 약간 들뜬 느낌을 준다면, 달빛은 차갑지만 신중한 느낌도 준다.
달빛정책은 ‘대화-비핵화’의 선순환을 목표로 삼는다.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동결)만 하면 대화를 시작하고, 이 대화를 통해서 비핵화도 이뤄나가겠다는 것이다. 북이 이미 핵개발을 한 상태에서 “비핵화 없이는 대화도 없다”고 고집하는 게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그런 고집이 북의 핵개발을 오히려 가속화시켰고, 핵탄두의 소형화와 운반체(미사일)의 정교화까지도 앞당기게 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달빛정책은 대화를 하고 교류·협력을 활성화시켜 궁극적으로 경제공동체와 정치공동체(통일) 수준까지 가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2007년 10·4 선언에 깊이 관여한 조명균 전 대통령 외교안보정책비서관을 통일부장관에 내정한 것도 눈길을 끈다. 10·4 선언은 북에 대규모의 지원을 제공키로 한 남북 간 합의를 말한다. 서해평화협력지대 건설, 해주특구 지정,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등 48개 항목에 비용만 100조원이 넘는 것으로 당시 추정된 바 있다.
역시 키워드는 대화다. 대화로 풀겠다는 것이다. 대화란 좋은 말이다. 대화를 말하는 사람은 늘 도덕적으로 우위에 선다. 대화를 반대하거나 주저하는 사람에겐 그럼 “전쟁 하자는 거냐?”와 같은 힐난이 쏟아진다. 그럼에도 대화가 만능키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정책의 한 수단일 뿐이다. 대화를 안 해서 북핵 도발이 심화됐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북핵에 대한 1차적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대화를 앞세운 지나친 포용정책으로 위기의 심각성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무시한 진보 정권 10년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보수정권의 책임만 거론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 하에서 대북정책은 결국 집권 여당이 선택하고 책임을 진다. 대화를 통한 달빛정책을 택한 이상 잘되기를 바란다. 비핵화도, 남북관계도 진전이 있기를 간절히 빈다. 달빛은 은근하다. 햇볕으로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보다는 달빛의 은근함으로 마음을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구조적 관점에서 몇 가지 우려가 없지 않다. 국제관계는 한 국가나 지도자의 의지나 본성보다도 국제체제라는 구조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케네스 왈츠가 말한 구조적 현실주의(structural realism)의 요체인데, 우리가 북을 대하는 방법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달빛정책도 동북아라는 구조(체제)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는 얘기다. 동북아는 기본적으로 미·중 간 견제와 균형에 기초한 체제다. 우리가 늘 한·미 공조에 기대는 것도 이런 구조적 특성 탓이 크다. 대미(對美) 굴종 또는 의존 차원으로만 볼 건 아니다.
문 특보는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으면 대화를 안 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어떻게 우리가 수용하느냐”고 했다. 그 정신과 결기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적 현실은 미국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걸 쉽게 용납하지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 어떤 정권인들 자주적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안 했겠나. 모두 그런 정신과 의지로 살고 싶었지만 그래서 얻는 이익이 손해보다 크지 않았기에 자제하거나 우회했을 뿐이다.
앞선 글(6월 16일자)에서 필자가 지적했지만 달빛정책의 자주성을 한·미 공조보다 앞에 놓거나,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대화만을 앞세우는 건 현책이 못 된다. 동북아체제를 확 바꿀 레버리지도 없으면서 밖에 나가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건 과욕이거나 부주의 탓이다. 북이 우리의 선의에 호응하리란 보장도 없지 않은가. 5년은 긴 시간이다. 한·미 공조를 튼튼히 하고 나서 북과 대화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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