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51일째이다. 어느 정부든 변화를 위한 개혁 드라이브는 집권 초기에, 이르면 이를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집권 초기에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몇 가지 승부수를 던지곤 한다. 문재인 정부의 그 승부수 중 하나가 바로 ‘탈원전 공약의 이행’으로 보인다.
공사비만 1조6000억원이 투입됐고 공사를 중단할 경우 물어야 할 보상비를 포함하면 매몰비용이 최소 2조6000억원이나 되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3개월 안에 최종 결정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발표이다. 기본계획 수립 후 수많은 난관을 거쳐 착공하기까지 걸린 세월이 7년여, 그 이후 또 1년 동안 현장 근로자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공사 진척률 30%에 이른 대형국책공사, 최소한 완공 후 30년 이상 국가 에너지 조달의 중요한 자산이 될 원전 건설의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데 너무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이다. 더구나 이러한 중요한 결정을 일반인으로 구성될 공론화위원회 산하 배심위원단에 맡긴다고 한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미래성장동력인 산업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백년지대계로 불린다. 따라서 그 근간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전문가들 간의 오랜 토론을 거쳐 정책변화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지를 국민들이 명확히 인식하게 될 때라야 비로소 국민의 여론을 묻고 판단을 구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외국의 예를 살펴보자. 우선 원전을 운영하고 있는 30여개 국가 중 탈원전을 선언하고 원전 폐지로 가고 있는 나라는 독일, 벨기에, 스위스, 대만 등 불과 4개국이다. 이에 비해 원전 확대로 방향을 정한 나라는 중국, 러시아, 영국, 인도를 비롯해 13개국 이상이다. 원전 유지로 분류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캐나다, 스웨덴, 네덜란드를 비롯해 7~8개국 정도이다. 더구나 원전 축소를 선언한 바 있는 프랑스나 일본에서 원전 유지 또는 원전 확대로의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 바로 최근 추세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대표적 원전사고라면 1979년의 스리마일 원전사고, 1986년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2011년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 세 개를 꼽는다. 피해당사국을 거명하면 미국, 우크라이나공화국(구 소련), 일본이다. 이들 세 국가의 원전정책을 살펴보자. 러시아는 2030년까지 원전 21기 추가 건설을 확정했다. 원전비중을 25~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원전 유지 국가의 범주에 있는 미국은 34년만에 원전 건설을 재개한다고 한다. 원전사고로 인한 참화 하면 독자들은 대부분 최근에 있었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떠올릴 것이다. 최근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일본은 사고 직후 50기에 가까운 전 원전의 가동을 중지시켰으나 이미 5기를 재가동 중이고 장기 에너지 수급계획을 새로 수립해 203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20~22%로 유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를 위해 정지시켰던 원전의 재가동은 물론 올가을 신규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원자력의 악몽이 생생할 피해국가들이 오히려 원전을 확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향후 최대 원전시장이 될 중국은 앞으로 원전을 170기 이상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가 수출을 모색하고 있는 체코는 2012년에 이미 향후 2040년까지 원자력 비중을 50%로 확대할 것이란 정부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인도는 2050년까지 원전 비중을 현재 3%에서 25%까지 확대한다고 한다.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거론되는 핀란드도 2030년까지 원전발전 비중을 현재의 30%에서 50%로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 반면에 우리의 경우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2040년에는 현재의 절반 수준인 12기 가동, 원전 비중은 2030년 시점에서 현재의 절반 수준인 11%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수명연장 없이 원자로들을 영구정지시켜 나갈 경우 호기당 해체 비용이 5000억 원에서 8000억원, 많게는 1조원 이상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어서 우리 원전산업계는 수입 감소와 천문학적 해체비용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최근 전 세계적인 원전정책의 큰 방향은 ‘탈핵’이 아니라 오히려 ‘원전 확대’로 선회하고 있다. 기후협약을 이행하기 위한 탄소 저감의 정책방향은 전 세계적 화력발전소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고 클린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 신재생에너지가 아직까지는 충분한 현실적 대안이 되기에는 미흡한 수준인 까닭이다. 원전 축소로 뒤따를 대폭적인 전기요금 인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또 저탄소 정책의 큰 방향에서 유례 없이 효율적인 원전을 포기할 수 없다는 상황인식이 배경에 있고 나아가 “경제, 경제가 문제인 상황”에서 산업경쟁력을 강화할 ‘값싼 에너지’인 원자력을 오히려 확대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각국 정부의 현실적인 정책선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잠깐 모두 멈춰 보는 것은 어떨까? 숨가쁘게 전력을 다해 달려도 결국 다다른 목표가 올바른 목표가 아니라면 그런 비극이 또 있을까? 이쯤 되면 신고리 5·6호기 건설중단 여부를 놓고 그 결정을 일임할 공론화위원회를 조직하기 보다는 국가정책상 중대전환이 될 ‘탈원전 정책’ 자체를 놓고 국민들의 의견을 구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 아닐까? 누군가 얘기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생뿐일까? 그 인생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는 국가, 정부에도 지금은 속도보다 방향을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