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금융과 IT의 결합은 시너지가 무한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협력 제휴 자체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신한금융과 아마존의 계약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지금까지 진행된 핀테크 업체와의 제휴는 은행 내부에서 이뤄지는 업무에 필요한 프로그램 개발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에서 진행되고 있는 핀테크 업체와의 협업은 대부분 통상적인 업무협약(MOU)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대면 인증,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을 중심으로 금융 지형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지만 IT업체와 손잡고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든다기보다 사실상 전통적인 금융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2015년 국내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업무 제휴를 맺었다. 국내 1위 은행과 1위 인터넷 기업의 만남은 당시 큰 기대를 모았다.
양 사는 네이버 라인의 간편결제 플랫폼 '라인페이'를 통해 일본 시장에서 송금·간편 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엔화로 라인페이를 충전하면 국내 신한은행 자동화기기(ATM)를 통해 원화로 출금할 수 있는 '라인페이 ATM 환전출금' 서비스 등을 개발했다. 그러나 신한은행과 네이버의 협약은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기보다 일본이라는 한정된 시장에서 플랫폼 제휴를 하는 것에 그쳤다.
다른 은행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 갤럭시S8의 바이오인증 서비스를 결합한 스마트뱅킹이나 SK텔레콤·KT 등 통신사와의 음성인식을 통한 송금·계좌 조회는 결국 큰 의미에서 보면 기존 금융 서비스와 큰 차이가 없다.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결합한 '로보 어드바이저'도 마찬가지다.
금융업의 모든 것을 재정의하는 '파괴적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은행업의 서비스가 진화된 것이지 기존 업권을 한 단계 뛰어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수준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은행권과 타 업권의 만남은 MOU인 경우가 많다. MOU는 당사자 이행 등을 전제로 맺는 약속이다. 단순히 의향이나 의사 정도를 확인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여건이나 환경이 바뀌면 언제든지 파기나 변경이 가능하다.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성이 없어 금융권에서는 주로 새로운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의 업무를 도와주는 형태로 진행된다.
반면, 신한금융그룹이 지난달 28일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과 체결한 전략적 협력 계약(Strategic Collaboration Agreement, SCA)은 기존 MOU와 성격이 다르다. 전략적 협력 계약은 MOU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협력방안이 있는 계약이다. MOU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이다.
'AI, 블록체인, 클라우드 등 차세대 디지털 기술 적용을 위한 로드맵 구상을 마치고 향후 3~5년간의 적용 대상 및 규모를 논의할 예정'이라는 내용을 명문화하고, 이에 대한 세부 내용을 구체화했다. 이행에 대한 강제성이 있으며, 계약 위반 시 위약금 등을 청구할 수도 있다.
신한금융과 같은 구체적 성과를 보이고 있는 곳은 하나금융지주 정도다. 하나금융은 지난해 SK텔레콤과 합작 형태로 설립한 핀테크 기업 '핀크(Finnq)'가 올여름 첫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 하나금융(51%)과 SK텔레콤(49%)이 공동으로 출자했고 자본금은 500억원 규모다.
핀크의 주요 상품은 중금리 대출로 알려졌다. 핀크가 은행법상 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예·적금 업무를 취급할 수는 없어 P2P 방식으로 중금리 대출을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은 자사가 보유한 2950만명의 고객 정보와 하나은행의 금융 정보를 결합한 빅데이터 솔루션을 활용할 방침이다.
최근 디지털금융이 확산되면서 이동통신업체와 금융업의 시너지가 기대되는 만큼 핀테크 업계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업종이 IT와 금융이다"라며 "지금까지 IT와 금융의 협약이 이상거래 감지, 빅데이터 활용 등 은행 내부에서 진행되는 업무에 그쳤다면 이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사업 모델을 구축해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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