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SK하이닉스의 도시바 메모리 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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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7-0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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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명석 산업부 차장

SK하이닉스가 뛰어든 도시바 메모리 인수전은 요즘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때문에 최태원 회장을 비롯해 SK그룹 측도 가급적 말을 아끼며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모습이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궁금증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가 지나온 길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광경을 목격하면서 무엇보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낄 것이다. 이번 인수전이 성공이냐 실패냐는 차후의 문제다.

SK하이닉스는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대기업 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합병한 현대전자산업이 모태다. 2000년 3월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을 바꿨고, 그해 8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돼 반도체 전문기업으로 새 출발했다. 출범 초기 삼성전자를 제치고 D램 반도체 세계시장 점유율 1위까지 올랐으나, 2000년대 D램 가격 붕괴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무리한 인수자금 부담으로 큰 위기에 처했다.

급기야 이듬해 10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한 채권금융기관협의회 공동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고 회사 매각이 추진됐다. 이때 등장한 기업이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다. 마이크론은 하이닉스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가 혼란에 빠질 것을 우려한 한국정부의 심리를 악용해 하이닉스 인수자금을 채권단이 제공하라는 황당한 요구를 했다.

굴욕적인 요구라도 받아들여 하이닉스를 매각해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쪽과 해외매각을 반대하는 하이닉스 임직원들과 학계, 시민단체의 주장이 대립각을 세우며 팽팽히 맞섰다.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하이닉스는 최소의 투자로 경쟁사 못지않은 기술을 만들어내며 힘을 키웠다.

덕분에 2004년 D램 시황이 회복되면서 하이닉스는 기회를 잡았고, 그해 창사 이래 최대 영업이익을 내며 독자생존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채권단은 2005년 7월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공동 관리를 종료하기로 결정하고 마이크론으로의 매각을 백지화했다.

하지만 상황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미·일·유럽연합·대만 등 각국 정부는 곧바로 자국 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국 정부의 불법지원을 이유로 삼아 하이닉스 반도체 제품에 거액의 상계관세 조치를 내렸다. 각국 정부의 의도적인 ‘하이닉스 죽이기’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즉각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치열한 법리 공방이 이어진 끝에 결국 우리 정부는 2005~2007년 기간 동안 이들 국가와의 소송에서 사실상 승소했다. WTO 분쟁 역사상 한국이 거둔 가장 완벽하고 짜릿한 승리였다.

통상 압박에서 벗어난 하이닉스는 자립의 길을 걷다가 2011년 11월 SK그룹 품에 안겼고, 2012년 3월 지금의 사명으로 바뀌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만약 2000년대 초반 여론대로 하이닉스를 마이크론에 넘겼다면, 마이크론은 자사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하이닉스를 무너뜨렸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하이닉스의 D램 메모리 공급을 줄여 가격을 높이려 했다고 한다. 설비투자보다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다.

플래시 메모리 시장 주력인 낸드 플래시 원천기술 보유기업이자, 세계 시장 점유율 2위인 도시바 메모리는 누가 인수하든 단숨에 업계 선두주자로 오를 수 있는 매력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인수전에 참여한 한국·일본·미국·중국 등 4개국 기업들마다 M&A를 통해 얻으려는 의도는 다른 것으로 파악된다.

분명한 것은 의도대로 목적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각 기업들은 자국 정부를 움직여 또다시 발목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이럴 경우 자칫 SK하이닉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미 도시바 메모리 인수 참여기업들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메모리의 핵심기술을 빼갈 것이라며 한국기업에 대한 일본 내 거부심리를 건드리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사업의 흥망성패를 경험해본 SK하이닉스는 이들의 공세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있다. 참고 기다리며 절차대로 원칙을 따르는 것이 또다시 어디선가 불거질 수 있는 후폭풍을 막는 최선의 방법임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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