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배철현의 아침묵상] 6.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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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병희 기자
입력 2017-07-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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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배철현]



1. 휴대폰과 소리
세상은 잡다한 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 듣고 싶은 소리도 있지만, 듣고 싶지 않는 공해와 같은 소리들이 많다. 우리는 하루 종일 다양한 ‘소리들’에 시달린다. 특히 IT가 가져온 문명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는 것만큼, 우리 자신이 스스로 유유자적할 수 있는 ‘여유공간’을 앗아가 버렸다. 지하철 안 우리는 모두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다. 휴대폰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자신이 반쪽인간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쉴 새 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들여다보고, 그것과 대화한다. 우리는 휴대폰에서도 쉴 새 없어 튀어나오는 띵동띵동 소리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기계다. 우리는 그 안에 사람이 숨어 있다고 착각한다. 그 숨어 있는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그들이 만든 가상경기장으로 들어가 온갖 괴물들과 생존게임을 벌인다. 휴대폰은 우리들의 ‘제2의 자아’이자 친구이며, 동시에 스승이다.

2. 듣기와 청취
우리는 귀를 머리 양쪽에 달고 있어 의도적으로 막지 않으면, 계속 들리는 소리들이 있다. 소음(騷音)이다. 지하철이 움직이는 소리, 옆자리 사람이 친구와 이야기하는 소리, 혹은 휴대폰에 문자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집에 돌아오면, 무심코 켠 TV를 통해 물건을 구입하라는 호객꾼들의 목소리와 ‘이상한 사람’이 모여 앉아 끊임없이 잡담하는 소음이 흘러나온다. 소음으로 가득 차 사회엔 희망이 없다. 특히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미디어가 신변잡기와 같은 사소한 이야기로 메우고, 정제되지 않고 절제되지 않으며 시류와 시청자의 수준에 편승하는 프로그램만 있다면, 그 사회엔 미래가 없다.
소음과 전혀 다른 소리가 있다. 정색을 하고 정해진 시간과 공간에서 듣는 소리다. 우리는 이렇게 듣는 행위를 '청취(聽取)'라고 부른다. 청취를 영어 단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리슨(listen)' 정도가 될 것이다. 아무런 준비를 취하지 않아도 저절로 듣는 행위인 ‘히어(hear)'와는 다르다. 청취는 듣는 행위를 방해하는 요소가 최소화되거나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가능하다. 청취는 ‘귀를 기울여 상대방의 말을 통해 자신이 변화하겠다는 의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여 더 나은 자신을 만들겠다는 마음인 덕(德)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를 흔들어 상대방이 전달하는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은유적으로 자신의 귀(取)를 상대방의 입으로 가져가는 행위다.
청취는 고즈넉한 저녁 시간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곡(月光曲)을 숨죽여 듣는 행위다. 이 곡은 베토벤이 애인 줄리에타 귀치아르디에게 헌정한 곡이다. 우리는 청취를 통해, 베토벤의 심오한 사랑을 감지한다. 더 나아가 베토벤에게 그런 영감을 허락한 저 높이 떠 있는 달의 평온함을 공감한다. 청취는 인생을 변화시킨다. 스승의 말을 청취하는 행위, 위대한 성인이나 사상가의 말을 책을 통해 듣는 행위, 위대한 예술가의 그림이나 건축, 혹은 음악이나 무용을 청취하는 행위는 나-우선이라는 이기적인 나를 허물어뜨린다. 위대한 청취는 더 나은 인간, 더 된 인간을 열망하는 나를 자극하여, 어제와는 다른 나를 창조하도록 부추긴다.

3. 내면의 소리
지하철에서 듣는 소리도 아니고, 공연장이나 극장에서 청취할 수 있는 소리도 아닌, 전혀 다른 소리가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소리다. 자신만의 고유한 일생의 임무를 지속적으로 듣고 확인하고 결심하는 두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다. 이 소리는 자신의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소리다. 과학자 아이슈타인은 이 소리를 ‘내면의 소리’라고 불렀고,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 엘리야는 ‘침묵의 소리’라고 불렀다. ‘침묵의 소리’는 형용모순이다. 소리는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침묵이란 어구가 수식하기 때문이다.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은 사람들이 모두 다 아는 그런 공개적인 장소가 아니다. 그 공간은 애벌레가 나비로 변신하기 위해 천지개벽하는 고치와 같은 장소다. ‘침묵의 소리’는 오래된 자아를 완전히 버리고 새로운 자아를 획득하기 위한 수련을 시작할 때, 들리는 소리다.

4. 엘리야의 동굴
기원전 9세기 고대 이스라엘의 왕 아합에겐 사회와 국가의 기강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예언자 엘리야다. 아합은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문제아’라고 불렀다. 당시 사람들은 인생의 행복은 돈에서 온다고 믿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엘리야는 아합과 그의 부인 이세벨의 물질주의 국가정책에 반대하여, 미움을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엘리야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누에고치와 같은 죽음의 공간으로 피신한다. 그는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가운데 불쑥 솟아오른 산, 호렙산으로 도망친다. 엘리야는 40일 동안 낮에는 뜨거운 태양열로, 밤에는 엄습하는 추위를 견디며 겨우 호렙산 정산에 있는 동굴에 도착하였다. 엘리야는 이 동굴에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너무 기진맥진하여 잠이 들고 말았다.
그때, 누군가가 엘리야에게 말을 걸었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 소리가 하늘에서 왔는지, 동굴 안에서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죽기 직전 엘리야는 신세를 한탄한다. “나는 예언자로서 사회정의를 외쳤는데, 나한테 돌아온 것은 살해위협뿐입니다. 내가 일생을 신을 위해 살았는데, 이제 신이 있는지조차 모르겠습니다.”

5. 침묵의 소리
엘리야에게 말을 건넨 어떤 존재가 말한다. “엘리야야! 나는 네가 섬기는 신이다. 내가 네 앞에 내 모습을 드러낼 테니, 동굴 어귀에 서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아라.” 엘리야는 지친 몸을 이끌고 동굴 어귀에 섰다. 그러나 거센 바람이 불어,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쉈다. 엘리야는 이 바람을 일으킨 자가 신이라고 생각하여 기다렸으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거센 바람이 지난 후엔 큰 지진이 일어나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흘러내리며 온 세상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그런 후에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러나 한참 후에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도 들을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지진이 일어난 후에 ‘미세한 침묵의 소리’가 있었다. 엘리야는 자신이 열망하는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심지어는 권력의 미움을 받아 도망한다. 그는 40일 동안 고군분투하여 자신의 삶을 재조정하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인 ‘40일’을 사막에서 보낸다. 이 사막엔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인 동굴이 존재한다. 엘리야는 이곳에서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소리를 듣는다. 그는 이제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신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침묵’이라는 소리다.
엘리야는 ‘미세한 침묵의 소리’를 히브리어로 ‘콜 도마마 다까’라고 표현했다. ‘콜 도마마’는 ‘침묵의 소리’라는 의미다. 이 표현의 난해함을 풀 수 있는 단어는 ‘다까’다. ‘다까’는 흔히 ‘미세한, 섬세한’으로 번역되는데, 더 깊은 의미는 ‘오랜 수련을 통해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할 때, 생기는 섬세함’이란 의미다. 자신의 삶을 위한 원대한 목표는 침묵의 소리를 듣고 반응할 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혹은 자신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침묵의 소리를 들었다 할지라도 그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지나치기 때문이다. 엘리야, 베토벤, 그리고 아이슈타인은 다른 사람들의 소리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내면의 소리,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소리가 가장 아름답다고 확신한 사람들이다. 나는 조용히 방석위에 좌정한다. 나는 오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나는 온전히 나에게 몰입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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