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권칼럼] 정책은 한결같음에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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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7-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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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성권]



버스를 타러 간다. 아파트 앞에 정류장이 있다. 지난 해 재건축으로 발음하기도 어렵게 아파트 이름이 바뀌었지만 정류장 이름은 옛 아파트 이름 그대로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을 법도 한데 40년 넘게 그대로 쓰고 있다. 버스 안에서 자동으로 나오는 정류장 안내방송도 그대로다. 옛 아파트에 살았던 할머니가 다니러 와 알려줬다. 정류장도 예전 그대로고, 버스 번호만 바뀌었을 뿐 그 버스란다. 그래도 아무 불편이 없다.

버스를 기다린다. ‘4분 뒤 도착‘이란 디지털 안내문구가 전광판에 뜬다. 여러 나라를 다녀봤어도 몇 분 뒤면 버스가 도착한다고 안내해주는 데는 보지 못했다. 안내대로 4분 뒤에는 어김없이 버스가 온다. 작은 차 한 대가 정류장에 머물더니 한 사람이 내려서 유리창이며 의자 등을 닦고는 사라진다. 궁금증이 풀렸다. 안내판 등이 언제나 가지런하고 깨끗한 이유를.

버스가 도착한다. 4분 뒤 도착이 음성과 문자로 중계 방송하듯 카운트를 하다 ‘곧도착’으로 바뀌고 버스가 온다. 버스번호 뒤 괄호 안에 (여유)라고 적혀 있다. 자리가 비어있다는 뜻으로 읽었다. 그런데 그걸 전광판이 어떻게 알까하는 의문은 남는다. 줄을 서서 세 번째로 탄다. 문을 열어 준 운전기사가 승객 모두에게 차례로 인사를 한다. 밖은 찌는 여름인데 버스 안은 냉방이 잘 되어 시원하다. 손잡이를 꼭 잡아달라는 안내도 몇 번씩이나 한다. 다들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버스 안은 조용하다. 검정색 승용차 뒷자리에 앉아 기사 눈치 봐가며 잠깐씩 졸던 것보다 훨씬 좋다. 정류장을 떠난 버스가 신호등에 걸려 대기하는 중에 건널목을 건너 온 승객이 문을 열어달란다. 운전기사는 안 된다며 버스 정류장을 가리킨다.

버스가 신통하다. 개문발차, 난폭운전, 급출발, 배차간격, 노후차량, 배기가스 등 많이 듣고, 신문 지면에 매일 나오던 단골메뉴였다. 제복 입은 안내양이 뒤로 돌아서서 몸으로 승객을 안으로 들이밀며 버스를 쾅쾅 두들겨 출발신호를 보내던 광경은 전설이 되었다. 우리에게 똑똑해진 버스가 왔다.

어떻게 이런 버스가 만들어졌을까? 두말할 필요 없이 그건 믿음 때문이다. 버스 탈 때 우리는 버스나 기사의 자격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격 갖춘 기사를 채용한 회사를 믿고, 그 자격증을 내준 서울시와 정부를 믿기 때문이다. 또 서울시와 정부가 우리에게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믿음은 일관성에서 나온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면 믿음이 자리하기 어렵다. 믿지 않으면 따르지도 않는다. 믿으라고 하면 더 안 믿는다.
그동안 몇 번이나 정권이 바뀌고 그때마다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었다. 순환보직은 공무원의 탈출구다. ‘저번 담당자가 하신 일입니다.’라며 시행된 정책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공무원들이다.
버스정책 자료를 살펴보니 정권이 바뀌어도 폐기, 백지화, 철폐 3종세트가 없다. 지난 정권에서 다하지 못한 정책들을 그들은 그 토대 위에서 끊임없는 회합과 소통을 통해 개선하고 다듬어냈다. 믿고 따라 준 시민들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일관되게 정책을 개발해서 더 나은 버스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전에 본 적 없는 미더운 공무원들이다.

서울시는 2004년 준공영제를 도입했다. 모든 회사의 운송수입금은 공동 관리한다. 준공영제는매년 버스정책시민위원회를 거쳐 확정되는 표준운송원가에 따라 산정된 총 비용 대비 총 수입의 부족분을 서울시 예산으로 보전하는 시스템이다. 도시교통본부는 “버스회사 간 과당 경쟁 해소, 종사자 처우 개선 등을 통해 시민의 편익은 증가하고 있다.” 라고 성과를 밝히고 있다. 시민의 버스만족도가 2006년 대비 2015년 80.1점으로 34% 상승했다고도 발표했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버스가 좋다던 할머니 말씀이 되뇌어진다.

새 정부에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국정 100대 과제'와 '국정 5개년 계획' 최종 발표를 앞두고 있다. 지난달 22일 공식 출범해 당초 이달 10일에 종료될 예정이었다가 대통령 방미 일정과 G20정상회의 개최 이후로 국민보고대회 일정이 연기되어 7월 15일에 종료된다. 모두 34명이 참여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역할은 문재인 정부 국정목표와 비전 정립,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나라살림 사정과 우선순위에 맞게 국정과제화 및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수립이다. 김진표 위원장은 취임하며 "짧은 기간이지만 국정기획위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밑바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도에 따르면, 발표 전에 민주당과 소통을 위해 협의에 들어갔다고 한다. 빛나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흔치 않은 행보다. 서울시의 버스정책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담아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일관성의 원칙을 지켜야 믿음이 생기고 국민이 따른다는 건 상식이다. 철도, 원전, 성과연봉제 등 자고나면 국가정책이 뒤집히고 있다. 상식이 아쉽다. 정책은 한결같음에서 빛난다. 국정기획위 발표를 주목하고 정부의 혜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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