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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한국용산 군용수용지 명세도(현재 주요지점 표시).[사진=용산구 제공]
강승훈 기자 = 일제의 용산군용지 수용 문건이 111년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용산군용지를 수용할 당시 조사한 가옥, 묘지, 전답 등의 구체적인 숫자가 담겨 관심을 모은다.
용산구(구청장 성장현)는 1906년 일본군이 용산기지를 조성키 앞서 작성한 61쪽 분량의 관련 문건을 공개하는 등 용산기지 원형 및 역사성 재조명에 나섰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문건 발굴의 주인공은 용산문화원에서 지역사 연구를 진행 중인 김천수씨(41)다. '아시아역사 자료센터(jacar.go.jp)'에서 수십만 건의 문서를 뒤져 2014년 결실을 거뒀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가 공개 설정해둔 것이었다.
문건은 해당 군용지 수용을 둘러싸고 당시 한국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와 이토 히로부미의 '통감부', 일본 육군성 사이에서 오간 여러 대화를 담아냈다.
말미에는 약 300만평에 이르는 용산군용지 면적과 경계선이 표시된 '한국용산군용수용지명세도(韓國龍山軍用收容地明細圖)'가 9쪽에 걸쳐 실렸다. 상세 지도에는 대촌, 단내촌, 정자동, 신촌 등 과거 둔지미 한인마을의 위치와 마을 규모가 상세히 그려졌다.
둔지미 마을은 조선 후기 둔지방의 일부였다. 당시 용산은 원효로 일대 용산방과 후암·이태원·서빙고동 일대 둔지방 등으로 구분됐다. 한편에 기록된 '구역별 철거기한'을 보면 1906년 6월부터 1907년 4월까지 둔지미 마을의 강제철거가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신촌에는 일본군사령관 관저가 들어섰으며, 현재 인근에 미8군 드래곤힐 호텔(DHL)이 자리했다.
구는 학계는 물론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컨대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 길은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서 충분히 복원이 가능하다.
성장현 구청장은 "국가 주도로 용산공원 조성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이곳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부족하다"며 "원주민들의 흔적이 깊이 배어있는 점을 감안해 구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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