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스타힐스

일제 용산군용지 수용 문건 111년만에 공개… 용산구, 용산기지 역사성 조명 나섰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강승훈 기자
입력 2017-07-13 14:43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1906년 한국용산 군용수용지 명세도(현재 주요지점 표시).[사진=용산구 제공]


강승훈 기자 = 일제의 용산군용지 수용 문건이 111년만에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용산군용지를 수용할 당시 조사한 가옥, 묘지, 전답 등의 구체적인 숫자가 담겨 관심을 모은다.

용산구(구청장 성장현)는 1906년 일본군이 용산기지를 조성키 앞서 작성한 61쪽 분량의 관련 문건을 공개하는 등 용산기지 원형 및 역사성 재조명에 나섰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문건 발굴의 주인공은 용산문화원에서 지역사 연구를 진행 중인 김천수씨(41)다. '아시아역사 자료센터(jacar.go.jp)'에서 수십만 건의 문서를 뒤져 2014년 결실을 거뒀다.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가 공개 설정해둔 것이었다.

문건은 해당 군용지 수용을 둘러싸고 당시 한국에 있던 '한국주차군사령부'와 이토 히로부미의 '통감부', 일본 육군성 사이에서 오간 여러 대화를 담아냈다. 

말미에는 약 300만평에 이르는 용산군용지 면적과 경계선이 표시된 '한국용산군용수용지명세도(韓國龍山軍用收容地明細圖)'가 9쪽에 걸쳐 실렸다. 상세 지도에는 대촌, 단내촌, 정자동, 신촌 등 과거 둔지미 한인마을의 위치와 마을 규모가 상세히 그려졌다.

둔지미 마을은 조선 후기 둔지방의 일부였다. 당시 용산은 원효로 일대 용산방과 후암·이태원·서빙고동 일대 둔지방 등으로 구분됐다. 한편에 기록된 '구역별 철거기한'을 보면 1906년 6월부터 1907년 4월까지 둔지미 마을의 강제철거가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신촌에는 일본군사령관 관저가 들어섰으며, 현재 인근에 미8군 드래곤힐 호텔(DHL)이 자리했다.

구는 학계는 물론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도 큰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컨대 후암동~서빙고동 사이 옛 길은 용산공원 조성 과정에서 충분히 복원이 가능하다.

성장현 구청장은 "국가 주도로 용산공원 조성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이곳의 역사성과 장소성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부족하다"며 "원주민들의 흔적이 깊이 배어있는 점을 감안해 구민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