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최신형 기자 =예고된 수순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논란이 여의도에 상륙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2일(현지시간) 한·미 FTA 재협상을 기습 통보하면서 추경, 인사문제 등으로 꼬인 여야 간 갈등도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참여정부 때인 2006년 1월1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미 FTA 협상 의지 발언 이후 5개월 만에 1차 협상에 나섰던 한·미 양국은 이명박 정부 집권 4년차인 2011년에 가서야 국회비준 동의 절차를 밟았다. 국회선진화법 도입 전인 당시 한나라당의 단독 처리에 반발한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만큼 보혁 갈등의 최정점에 있었던 셈이다.
한·미 FTA 재협상 절차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야권은 13일 “재협상의 진실을 밝히라”며 공세에 나섰다. FTA 대표인 통상교섭본부장 인선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으로 답보 상태다. 국민의당이 이날 국회 정상화 수순을 밟았지만, 향후 정국에 따라 미국 측이 요구한 ‘오는 8월 한·미 FTA 특별공동위원회 개최→11월 협상 개시’도 국내 정치사황에 따라 막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법률전문가들은 “FTA 재협상 때 국회 비준 동의를 다시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첩첩산중, 산넘어 산이다.
◆'트럼프 청구서' 기습통보 일격…국회 준비 ‘無’
한·미 FTA 논란을 둘러싼 갈등의 주된 원인은 ‘비밀주의’였다. 외교 관례상 불가피한 일이지만, 2007년 6월30일 한·미 FTA 합의문 공식 서명 이후에도 최소한의 정보 제공조차 거부했던 ‘협상정보 비공개’ 행위는 결국 ‘밀실·졸속 협정→한·미 FTA 국문 협정문 오역’으로 이어졌다.
참여정부 말기 때인 2007년 ‘한·미 FTA 고위급 협의 주요 결과 및 주요 쟁점 협상 방향’ 비공개 문건 유출을 놓고 정부와 진보진영이 강하게 충돌한 것도 ‘비밀주의’ 행정의 대표적 사례였다. 소통 정부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FTA 도그마’를 깰지 주목된다.
진영논리에 따른 양극단도 문제다. 진보정권인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추진 당시 내세웠던 논리는 ‘세계적 추세’였다. “부당한 양보는 없다”고 천명했던 노 전 대통령은 끝내 ‘4대 선결 조건’(스크린 쿼터 축소·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완화·약값 재조정)을 수용했다. 이 중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는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100일간의 촛불시위로 치달았다.
현 국면도 비슷하다. 일단 용어를 놓고 여야 간 ‘프레임 전쟁’이 개시됐다. 당·정은 “한·미 FTA 재협상이 아닌 ‘개정 협상’”이라고 못 박았지만, 야권은 ‘재협상’ 표현을 쓰면서 맞섰다.

한·미 FTA 재협상 절차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야권은 13일 “재협상의 진실을 밝히라”며 공세에 나섰다. FTA 대표인 통상교섭본부장 인선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으로 답보 상태다. 국민의당이 이날 국회 정상화 수순을 밟았지만, 향후 정국에 따라 미국 측이 요구한 ‘오는 8월 한·미 FTA 특별공동위원회 개최→11월 협상 개시’도 국내 정치사황에 따라 막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정부조직법 ‘하 세월’…시나리오별 대응마련 빨간불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불발에 대해 “야당의 협조가 매우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명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정상회담 2주 만에 한·미 FTA 재협상이 마치 정상회담 후속 조처인 것처럼 우리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며 반박했다.
변수는 후속조치를 둘러싼 갈등이다. 이 경우 ‘한·미 FTA 협정문’ 22.2조가 문제가 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특별공동위원회 개최를 요구한 법적 근거도 이 조항이다. 22.2조 3항과 4항에는 ‘협정 개정 검토’와 ‘당사국 요청 후 30일 이내 특별 회기로 회합한다’는 규정이 있다. 홍 수석부의장은 이와 관련해 “30일 이내에 우리가 답을 해야 한다”며 “정부조직법이 빨리 개정돼야 통상 문제를 총괄하는 우리 정부의 자리와 직책을 확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툭 하면 스톱하는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한·미 FTA 재협상 이슈는 정치적 변곡점마다 문재인 정권 5년 내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마지막 단계인 국회 비준을 다시 받아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재정 부담 상황과 관계없이 재협상 때에는 국회 비준 동의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교 변호사(서울국제법무법인)도 “국회 비준을 다시 밟아야 하지만, 경제 통상 협정인 만큼 여야가 대승적 차원에서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상황이 양국 협상에 발목을 잡는다면, 시나리오별 대응전략 마련은커녕, 위기를 기회로 삼는 ISD(투자자 국가제소권) 재검토 및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체결을 통한 ‘플랜 B’ 마련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