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중국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회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強) 총리 등 7명으로 구성된 상무위원들은 모두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 거주하며 근거리에서 자주 회합한다. 이웃주민이라고 볼 수 있는 7인의 지도자들은 수시로 모여 회의를 한다. 1주일에 1회 이상 만난다는 설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얼마나 자주 모이는지는 공개된 바 없다.
중공 중앙 정치국은 7인의 상무위원을 포함해 25인의 정치국위원으로 구성된다. 정치국위원은 매달 1차례 정치국회의를 개최한다. 정치국위원에 진입했다면 중국공산당 서열 25위 안에 포함됐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모든 중요한 결정들은 상무위원회에서 결정되며, 정치국회의는 관련 결의문이나 통지를 낸다. 이 결정들은 중국 전체를 관통한다.
현 중공 중앙 정치국은 2012년 11월 개최됐던 18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구성됐다. 정치국위원의 임기는 5년이다. 올가을 예정된 19차 당대회에서는 새로운 정치국과 상무위원회가 구성되는 셈이다.
5년 전 18차 당대회가 구성한 정치국위원 25인 중에는 1960년대생이 두명이 포함됐다.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서기와 쑨정차이(孫政才) 충칭(重慶)시 전 서기가 그들. 1963년생으로 동갑내기인 두 인사의 정치국위원 진입은 중국공산당이 이 두 사람을 차기 지도자로 육성할 뜻이 있음을 만방에 공표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티베트자치구에서 오랜 기간 소수민족 통치를 관할했으며 공청단 제1서기와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서기를 역임했던 후춘화는 커리어상 차기 국가주석으로 성장할 것으로 여겨졌다. 후춘화가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발탁한 인사라면, 쑨정차이는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가 육성한 인사다. 국무원 농업부장 출신인 쑨정차이는 총리였던 원자바오가 아꼈으며, 그 자신이 테크노크라트의 길을 걸어온 탓에 차기 총리 후보로 받아들여졌다.
1960년대생 중국 정치인 중에 이들처럼 장관급 직위에 빨리 올랐으며, 이들처럼 지방정부 당서기를 오래 한 이가 없다. 경력면에서 절대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는 두 정치인은 올가을 개최될 당대회에서 상무위원 진입을 꿈꿨다. 올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에 진입한다면, 2023년에 각각 차기 국가주석과 총리에 오르게 되는 상황이었다.
◆승천 앞두고 낙마한 쑨정차이
두 정치인 모두 차기 지도자로서 지방정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과감한 개혁조치를 취하는 한편, 스스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한다면 충분히 큰 어려움 없이 상무위원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쑨정차이는 19차 당대회를 3개월여 앞둔 지금 상황에서 낙마하고 말았다.
2006년 최연소 장관으로 농업부장에 오르며 정치스타로 주목받았던 쑨정차이. 그는 아마도 그때부터 어렴풋이 본인이 훗날 총리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10년 이상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노심초사했을 쑨정차이지만 상무위원 진입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해 그는 현재 상무위원 진입 좌절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은 나락에 빠질 수렁에 발을 담갔다.
◆명예로운 퇴진마저 장담 못해
지난 15일 중공 중앙은 시진핑 주석의 핵심 측근인 천민얼(陳敏爾) 구이저우(貴州)성 서기를 충칭시 서기에 임명했다. 특히 이날 개최된 충칭시 당위원회 간부회의에는 자오러지(趙樂際) 공산당 중앙조직부 부장이 직접 참석해 인사이동 사실을 발표해 사안의 중대성을 직감케 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앙조직부는 쑨정차이에 대해 '이제는 충칭시 서기를 맡지 않는다'는 발표만 했다. 보통 당 서기 등 요직인사의 인사이동에는 '링유런융(另有任用)'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이는 이후 면직된 이의 새로운 보직을 발표할 예정임을 뜻한다. 쑨정차이에게는 '링와이런융'이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았다. 이는 쑨정차이의 좌천을 뜻한다.
또한 15일 개최됐던 충칭시 당위원회 간부회의 인계회의에서는 쑨정차이의 이름과 업적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번 쑨정차이의 퇴진이 명예롭지 못함을 시사한다.
◆기율위 조사설 터져나와
이튿날인 16일에는 홍콩 명보(明報)와 SCMP 등 화교권 매체들이 쑨정차이가 당 기율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쑨정차이가 14일 베이징 전국금융공작회의에 참석했다가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 홍콩매체의 중국 내부정치 보도는 100% 신뢰하기 어렵지만, 이번 소식은 정황상 신뢰성이 높아 보인다.
아직 중국당국의 공식채널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신화통신의 보도만으로도 최소한 그가 차기 상무위원 진입에는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보시라이 적폐 청산 자아비판
사실 쑨정차이의 신변에 이상이 있을 것이라는 신호는 올해 초부터 감지됐다.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 제11순시조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월까지 충칭시를 순시했다. 순시 결과 기율위는 "충칭이 보시라이(薄熙來)와 왕리쥔(王立軍)이 남긴 사상적 해악을 철저하게 없애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종료 후 열린 충칭시 당위원회 토론회에서 쑨정차이는 "보시라이와 왕리쥔의 사상적인 해악을 정리하지 못했다"고 자아비판했다. 쑨정차이는 2012년 충칭시 서기에 보임됐다. 당시 그의 가장 큰 임무는 보시라이 적폐 청산이었다. 그런 그가 보시라이 적폐 청산에 실패했음을 자아비판한 셈이다. 구체적으로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는 공식적으로 공개된 바가 없지만, 쑨정차이의 정치력에 흠결이 생겼을 것이라는 추측은 가능했다.
◆간첩죄, 권력남용, 비리
보시라이 전 서기는 사익을 위해 권력을 남용했고,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저지른 영국인 독살 사건 처리를 놓고 당시 공안국장이던 왕리쥔을 핍박했으며, 이로 인해 왕리쥔은 미국 망명, 즉 반역행위를 시도했었다. 이들의 '사상적인 해악'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은 충칭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또 발생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지난 5월 무화핑(沐華平) 충칭시 부시장이 홍콩 여자 친구의 간첩 활동 혐의와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터져나왔다. 무화핑은 여자친구에게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무 부시장은 충칭의 군수산업과 석탄산업 등을 관리하고 있었다.
이어 지난달에는 허팅(何挺) 충칭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이 비리로 낙마했다. 허팅은 쑨정차이 서기와 고향이 같다. 허팅은 그동안 자신이 쑨 서기와 수십년 교우를 맺은 친구지간이라며 밀접한 관계를 자랑했었다고 한다. 허팅의 죄목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무화핑에 이어 허팅의 낙마까지 이어지자 쑨정차이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다시 주목받는 왕치산의 구이저우행
중공 중앙은 쑨정차이의 낙마를 준비하고, 후임자를 물색해온 것으로 추정된다. 5월 말부터 공개활동을 하지 않았던 왕치산 기율위 서기는 지난달 20일부터 22일까지 구이저우성을 시찰했다. 구이저우성의 반부패활동을 격려하기 위한 차원의 지방시찰이었다. 3일간의 시찰에는 천민얼 서기가 전 일정을 배석했다. 왕 서기는 천민얼과 함께 이 자리에서 충칭시 후임서기와 관련된 논의를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 차기총리 지명하나
쑨정차이의 낙마가 중국 정계에 몰고올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주석의 1인 지배체제가 공고화되고 있는 현재, 차기 상무위원 진용을 점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차기 상무위원회가 현재의 7인체제를 유지할지 5인 체제로 바뀔지에 대한 전망도 쉽지 않다.
10년 전 당대회에서는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가 동시에 상무위원에 진입해 후계구도를 확정지었다. 20년 전 당대회에서는 후진타오 주석만이 상무위원에 올랐으며, 원자바오 전 총리는 상무위원에 들지 못했다. 후계자 중 1명만이 상무위원에 진입한 것이다. 이번 당대회에서도 역시 20년 전처럼 후춘화 광둥성 서기만 상무위원에 진입해 차기 국가주석직을 예약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차기 총리후보를 추후에 시진핑 주석이 낙점할 수 있다. 시 주석으로는 차기 총리를 통해 퇴임 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후춘화 상무위원 입성 파란불
또한 왕치산 서기의 경우, 현직 정치국위원이자 유력한 차기주자였던 쑨정차이를 비리 혐의로 낙마시킬 경우 그의 정치적 위상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로써 그의 차기 상무위원직을 유임시켜야 한다는 당내 여론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왕 서기는 1948년생으로 고령이며, 이번 당대회에서 1950년 이전 출생자들은 상무위원을 물러나야 한다는 관례를 깨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낙마한 쑨정차이와 달리 후춘화 서기는 시 주석의 신임을 받으며 유력한 차기 상무위원 후보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지난 4월 광둥성 당위원회는 시 주석의 중요지시 사항을 이행하고 학습하는 것과 관련한 통지문을 발표하며 시 주석이 최근 광둥성의 업무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공청단파인 후춘화로서는 정파를 달리하는 시 주석의 지원마저 얻는다면 어렵지 않게 차기 국가주석 자리를 예약할 수 있다.
<쑨정차이 간단이력>
*출생: 한족, 1963년 9월
*출신지: 산둥(山東)성 룽청(榮成)
*학력: 베이징농림과학원 재배경작학 박사
*당내주요이력: 제17대 중앙위원, 제18대 정치국위원
*주요이력:
1980~1984 산둥 라이양(萊陽)농학원 학사
1984~1987 베이징 농림과학원 재배경작학 석, 박사
1987~1997 베이징 농림과학원 부주임, 주임, 부원장
1997~2002 베이징 순이(順義)현 부서기, 현장
2002~2006 베이징 순이구 서기
2006~2009 국무원 농업부장
2009~2012 지린성 서기
2012~2017 충칭시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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