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주 기자 = “적정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한 건설업체의 영업이익률이 지난 10년 동안 마이너스를 면치 못한 것은 물론 이로 인해 하도급·자재·장비업자의 부실화까지 불러오고 있습니다. 적정 공사비 확보는 공공건설현장 일용근로자의 임금체불과 각종 안전사고 증가와도 무관치 않습니다.”
18일 서울 강남구 건설회관 협회장실에서 만난 유주현 대한건설협회 회장은 인터뷰 첫머리부터 적정 공사비란 민감한 현안을 꺼내들었다.
지난 3월 건설협회 27대 회장으로 취임한 유주현 신한건설 대표는 이제 막 임기를 130일 가량 넘겼다. 하지만 신임 유 회장에게는 취임한 순간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가 눈앞에 놓였다. 그 중에서도 유 회장이 자신의 임기 내 달성하겠다고 약속한 적정 공사비 확보 문제는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정상화 방안을 도출하는 작업에 이미 착수한 상태다.
앞서 유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적정 공사비 확보를 강조했다. 적정 공사비를 확보하지 못한 원도급업체의 부담이 하도급업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유 회장의 설명이다.
현재 공공공사 입·낙찰 제도는 300억원 이상 공사를 대상으로 하는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와 300억원 미만 공사를 대상으로 하는 적격심사낙찰제도로 구분된다. 지난해 정부는 최저가 낙찰제 폐해를 막기 위해 종심제를 도입했지만 예산에 적정 공사비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탓에 낙찰률이 오르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건설사가 떠안고 있다는 게 유 회장의 주장이다. 실질적인 낙찰률 상향 등 적정 공사비 확보가 필요하다는 게 유회장의 생각이다.
유 회장은 “지난 5월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 산하 17개 건설단체와 함께 공공건설 공사비 정상화를 내용으로 한 탄원서를 기획재정부 등 유관 부처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등에 제출했다”며 “하반기엔 전문가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정책 토론회를 열어 공사비 실태와 폐해를 종합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후 100일...“전국 건설 현장 목소리 들어”
취임 후 유 회장의 100여일은 바쁘게 흘러갔다. 특히 그는 전국에 있는 회원사를 돌면서 동남권 모래채취 문제 등 지방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난 1월 남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모래 채취가 중단된 후 레미콘 가격 인상이 수도권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 회장은 “현재 태안군은 허가된 물량이 소진돼 채취중단 상태이고, 옹진군도 잔여물량이 약 140만㎥에 불과해 다음 달 중 공급 중단이 불가피한 실정”이라며 “하반기에 서해 EEZ(배타적경제구역) 모래까지 끊기고 추가 연장 등 정부의 대책이 없다면 공사가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지방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온 유 회장은 “만약 서해 EEZ마저도 모래 공급이 중단된다면 전국의 레미콘 업체와 건설업체는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파급이 우려된다”며 “건설 현장에 모래가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정부에 지역 건설사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 방미 순방길 동행...“국내 건설사의 해외시장 진출 다각화 노력”
유 회장의 취임 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한건설협회도 새 정부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특히 유 회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방미 순방길에 함께해 현지 주재 건설전문가와 정책 간담회를 열고 의견을 교환하는 등 국내 건설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유 회장은 “건설산업은 대내적으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와 부동산 시장 침체 등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고, 대외적으론 이달 해외건설 수주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 가량 줄어들었다”며 해외건설 진출 국가의 다각화를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내년 SOC 예산을 올해보다 15%가량 축소해 편성하는 등 SOC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최근 건설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 회장은 이에 인프라 시설은 단순한 건설이 아닌 ‘공간복지’라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SOC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이미 도로·교량 등 인프라 시설이 구축돼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다”며 “실제 우리나라 인프라 수준은 OECD 34개국 가운데 하위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SOC 투자가 공간복지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며 “인프라 건설은 안전하고 편리한 국토 조성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지여한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 회장은 이번 방미길 참여에 그치치 않고 후속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추진 중인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통해 우리 기업의 미국 진출 기회를 확대하는 방안을 정부와 협의할 것”이라며 “최근 해외건설이 단순도급 위주에서 투자개발형으로 전환되고 있는 만큼 진출 전략을 적극적으로 모색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협회는 국내에선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공약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 유 회장은 “도시재생사업은 대규모 개발보다는 소규모 정비사업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중소업체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며 “중소업체는 지역 주민들과 소통에서도 유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부의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어떤 정책이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서 재원 확보가 필수”라며 “연간 10조원이라는 금액은 국가 재정으로 부담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민간의 자본을 활용해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사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민간자본 투자 활성화를 위한 제도 기반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사와 함께 걸어온 건설산업 70년...“건설산업 전반, 체질 개선 필요”
오는 20일은 70주년을 맞이한 건설의 날 행사가 열린다. 대한건설협회장으로서 건설산업 70주년을 맞이한 유 회장에게 이 날은 특별한 날이다. 유 회장은 “우리나라의 눈부신 경제 성장의 역사는 건설산업의 70년 역사와 궤를 함께하고 있다”며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유 회장은 “건설산업은 전후 피폐해진 국토 재건에 기여한 것은 물론 교통·에너지 등 다양한 산업 인프라를 구축하며 국가 경제 도약의 토대를 다져왔다”며 “1990년대에는 10%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주도했고, 금융위기에 빠졌을 땐 국가 경제 성장의 버팀목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4차 산업혁명은 건설산업의 첨단화를 요구하고 있고, ‘삶의 질 향상’과 ‘안전한 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며 “이런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선 건설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방법으로 유 회장은 “지속적인 기술 개발 투자 뿐 아니라 산업 간 경계를 허무는 창의적인 도전이 계속돼야 한다”며 “건설 생산체계의 패러다임 변화와 혁신적인 건설문화 확산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건설산업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변화와 새로운 성장 도력 발굴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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