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智樂弼樂5] 세낭크 수도원에는 라벤더가 익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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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7-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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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樂弼樂 5. 세낭크 수도원에는 라벤더가 익어가네
조용준(작가·문화탐사 저널리스트)

[사진=조용준]


해마다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이 되면 내 시선은 늘 프랑스 남단 프로방스로 쏠리곤 한다. 이맘때면 세계 최대 면적의 라벤더 밭이 펼쳐져 있는 프로방스에서 라벤더가 익어가기 때문이다.
과일도 아닌 꽃이 어떻게 익어가냐고? 그건 꽃의 색깔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6월 초순에는 희미한 보라색이던 꽃들이 7월이 되면 선명하고 농익게 변한다. 드넓은 평원이 온통 보라색으로 변해 지평선마저 보라빛깔로 넘실거리며 빛난다.
아마도 프로방스 발렝솔(Valensole) 평원은 이 혹성에서 보라색 지평선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일 것이다. 호주의 태즈메이니아(Tasmania) 섬에도 드넓은 라벤더 밭이 있지만, 그 규모에서 프로방스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발렝솔에서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라벤더 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온통 보라색의 물결, 일망대해다. 그 물결이 마음을 압도해서 무념무상 열락의 경지에 오른다.
그 순간만큼은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이다. 꽃 하나로 법(法)이 일고 법이 통하며 무아지경이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이 태초의 정적에 묻히는 순간을 맛보게 된다.
꽃 하나로도 해탈에 이를 것만 같은 이 열반적정이 나는 해마다 그립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프로방스로 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필자가 라벤더 평원을 찾아 프로방스로 처음 떠난 것은 2010년이었다. 이때만 해도 프로방스 ‘라벤더 루트’, 즉 라벤더 밭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지역과 길에 대해 아는 사람은 국내에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술이나 자료도 있을 리 없었다. 필자는 잘 모르는 프랑스어와 씨름하며 고생고생 끝에 겨우 ‘라벤더 루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우여곡절을 거쳐 라벤더를 보러 떠났다.
필자를 프로방스로 가게 만든 것은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이리저리 웹 서핑을 하다 우연히 수도원 건물 앞에 라벤더 밭이 펼쳐져 있는 사진을 발견했는데, 시선을 뗄 수가 없었고 그곳에 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다. 바로 세낭크(Sénanque) 수도원이었다. 세낭크 수도원의 라벤더 밭 사진은 지금은 프로방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거의 대표적인 상징이 되었다.
이곳의 역사는 1148년 시토수도회(Cistercian)의 한 수도사가 건물을 짓기 시작한 데서 출발한다. 그러니 역사가 자그마치 869년이다.
시토수도회는 가톨릭 베네딕트 원시회칙파(原始會則派)의 주축을 이루는 개혁적 집단이다. 봉토에서 나오는 수입을 거부하고 단식·침묵·노동을 엄격히 지키며 토지 경작을 해서 살아간다. “자신의 손으로 일하지 않고 사는 것은 수도사가 아니다”라는 성 베네딕트의 원칙에 가장 충실하기 때문에 수도원도 그들이 직접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며 100년이 걸려 완성했다.
따라서 수도원 앞 라벤더 밭은 그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수단의 하나다. 그들은 직접 재배한 라벤더와 허브, 벌꿀로 만든 비누나 양초, 목욕용품, 방향제 등을 판매해 수도원을 운영하고 자신들의 끼니를 잇는다. 이렇게 청빈하고 소박한 삶은 수도원 내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럽 성당과 교회들은 온통 현란한 프레스코 벽화와 제단화, 금·은의 성물(聖物)로 넘쳐나지만, 이곳은 그런 게 전혀 없이 텅 비어 있다. 화려한 교회와 성당에 익숙해진 관광객들이 당황할 정도다.
이제는 수도원이 너무 유명해져서 우리나라 불사(佛寺)들처럼 입구에 말뚝을 치고 입장료를 받아도 사람이 넘칠 듯한데, 전혀 그런 것도 없다. 베네딕트회가 점점 타락해 회칙 적용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 사실에 불만을 품고 새로 창설한 수도회답다. 세상에는 이런 신앙인들이 여전히 있다.
지배자와 권력자의 색채인 라벤더가 회색의 칙칙한 수도원 건물을 포위하고 있는 모습은 수도사의 금욕적 분위기와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기이하게 들리겠지만 중세의 보라색은 지중해에 많이 서식하는 가시달팽이에게서 얻었다. 달팽이 점액을 썩혀 불에 달인 죽에 옷감을 넣었다가 말리면 녹색, 빨강으로 변하다가 마지막에 보라색이 된다. 그러나 로마 황제가 제관식에 입을 외투 하나 염색하는 데 무려 300만 마리의 달팽이가 필요했으므로, 보라색은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금단의 빛깔’이 되었다.
로마에서는 황제와 그 계승자만이 보라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가톨릭도 마찬가지다. 보라색 수단(soutane)은 주교나 교황청 고관 등 고위직만 입을 수 있다.
우리나라 종교계의 ‘보라색 옷 입기’는 적당한 선을 이미 오래전에 깨고 올라갔다. 교회들은 누가 높이 올리나 경쟁이라도 하듯 시내 요처마다 마치 산성이나 요새처럼 점령하고 있다. 불상도 갈수록 커지고 높아지고 화려해져서 꼭 동남아의 절처럼 변해간다. 종교계 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수구집권세력의 적극 지지자로 그동안 적폐를 쌓아올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사실은 국민들도 잘 안다.
정부가 마침내 종교인도 세금을 내는 종교과세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종교계의 반발은 불문가지이고, 그들은 선거 때의 ‘표’로 정부를 위협할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노동을 하지 않는 종교인이 가장 세속적인 것은 이 시대의 비극이다. 그들은 세낭크 수도원의 수도사들처럼 청빈한 신앙인으로 정녕 돌아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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