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우크라이나 사태 등을 빌미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대(對)러 추가 제재가 확정될 경우 국제무역기구(WTO) 제소 등 미국에 보복할 것이라고 예고해 양측 갈등이 커질 전망이다.
◆ EU "러시아 제재 시 미국에 보복"··· 평행선 달리는 미국·EU
EU는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 명분으로 미국의 대(對)러 제재가 주요 7개국(G7) 파트너십과 통일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제재로 인해 유럽 내 에너지 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2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6일 예정돼 있는 EU 집행위원회 회의 준비용 메모에는 "미국의 대러 제재가 채택될 경우 수일 내에 행동을 취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명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구체적인 조치로는 △대러 제재가 EU의 이익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공개 또는 서면으로 받을 것 △유럽법을 활용해 미국의 대러 제재가 유럽 내에서 집행되지 않도록 할 것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통해 보복할 것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EU가 후속 조치에 잰걸음을 내는 데는 미국의 새로운 대러 제재안에 러시아 정보기관과 군부는 물론 에너지·운수기업 등 다양한 부문에 대한 제재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단 러시아 국영기업인 가스프롬이 건설하고 있는 '노드 스트림 2'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등 유럽 에너지 사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EU 법에 따라 러시아 단체와 합법적으로 거래하는 철도, 금융, 해상운송, 광산 등 많은 EU 기업들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유럽 에너지 기업 등이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를 경우 EU의 대응책을 긴급히 검토하라고 요청한 이유기도 하다.
이에 따라 최근 철강 관세 문제를 두고 마찰을 빚어온 미국과 EU 간 갈등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U는 최근 미국이 자국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입산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 데 대해 미국이 유럽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할 경우 즉시 보복하겠다고 경고하면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 25일 표결 처리 주목··· "트럼프 대통령 입지 더 좁아질 듯"
미 하원의 추가 러시아 제재안 표결은 25일 부쳐질 전망이다. 지난 14일 상원에서 97대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통과된 뒤 열흘여 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러시아 제재안이 하원을 통과하면 북한·이란 제재안과 함께 상원 표결 절차를 거칠 예정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 등 현지 언론은 전했다.
러시아 제재안에는 △러시아 정보기관과 군부, 에너지·운수기업 등 다양한 부문에 대한 제재 규정 △러시아의 부패와 불법 금융 행위 추적·제재 △대 러시아 제재 완화·해제 시 의회 검토를 명시해 트럼프 대통령의 러시아 제재 완화 시도를 원천적 봉쇄할 것 등의 내용이 담겼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이날 보도를 통해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 트럼프 일가에 대한 특검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제재안을 어떻게 수용할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일단 백악관 내에서는 반응이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정부는 러시아에 강경하게 대처하기 위한 의회의 움직임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앤서니 스카라무치 신임 백악관 공보국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주요 혐의로 지적된 미 대선 개입 여부를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며 "대통령이 해당 법안에 서명할지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백악관 내부에서조차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러시아 스캔들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 본인과 가족에 대한 수사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러시아 제재안이 표결 절차를 밟는 것만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를 좁게 만들 수 있다고 WP 등 외신은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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